짧은 수필(원고지3장)

돛단배와 바람

장 산 2021. 10. 19. 01:43

ⓒ연합뉴스

 

 

바람의 힘으로만 움직이는 요트 시합을 본 적이 있다.

돛으로 동력을 얻으니 바람이 불어야 잘 달릴 수 있는 건 당연하다. 특별히, 뒤바람이 불어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말 그대로, 순풍에 돛단배가 되는 것이다.

 

노나 엔진이 없어 오로지 바람에만 의존하는 돛단배는,

그러나 갈 때 순풍(順風)이면 돌아올 땐 반드시 역풍(逆風) 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성난 파도까지 세일러(sailer)의 의지를 시험한다. 망망대해에서 실제 이런 상황을 맞는다면 누구라도 간절히 기도를 올릴 게 틀림없다.

 

놀랍게도, 뱃사람을 진짜 절망 상태에 빠트리는 건 역풍이 아닌 무풍(無風)이란 점이다.

고생은 되겠지만, 그래도 역풍은 움직일 힘을 준다는 것이다. 역풍 속에서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앞으로 전진하는 힘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무풍은 편안할지 몰라도 한 발짝도 배를 움직이진 못한다.  

 

바람이 없으면 인간은 그저 무기력하게 처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배가 뒤집힐 듯 요동치고 파도가 들이친다고 무풍을 바랄 순 없는 이유이다. 허먼 멜빌이 쓴 <백경(Moby-Dick)>의 모티브가 된 <포경선 에식스((Essex) 조난기>에는 적도 무풍지대에서 고통받는 장면이 실감 나게 그려져 있다. 

 

모든 파장(wave)에는 업다운(up-down)이 있고 강물이 굽이쳐 바다에 이르듯 굴곡(屈曲)이 있기에 나아가는 힘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긴 인생 항로(航路)에서의 역풍도 그런 의미이지 않을까. 어렵겠지만, 이미 닥친 역풍이라면 그 마음이 낫지 않겠나. 

 

아이러니하게도, 역풍은 세차게 얼굴을 때리며  생의 의지(意志)를 북돋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