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수필(원고지3장)

보드카와 소주

장 산 2021. 11. 18. 00:10

러시아 보드카(vodka)는 독주(毒酒)의 대명사쯤 되어 있다.

술 좀 하는 주당(酒黨)들 중에는 차별성 부각을 위해 일부러 찾기도 한다. 무색·무미·무취의 3()가 특징인데, 특히 추울 때 체온 유지에 딱 좋다.

 

ⓒ중앙일보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도수는 일반적으로 40도여서 사실 아주 높은 건 아니다.

원소 주기율표를 만든 멘델레예프(D. Mendeleev)가 가장 이상적인 도수로 40도를 주장한 이후 1894년부터 이렇게 고정되었다고 한다. 이 정도가 몸에 가장 잘 흡수되고, 맛도 좋다는 것이다.


한때 러시아에서 보드카를 즐겨 마신 적이 있었다.

, 특별할 것도 없이 미국 거지가 양주를 먹는 경우와 같다고나 할까? 하여튼, 추운 겨울에 보드카의 걸쭉한 얼음 알갱이가 목구멍으로 내려가는 느낌은 전율이었다.

오르락내리락, 방구들에 불을 때듯이 곧바로 뜨거운 열기가 밑에서부터 올라온다.


보드카를 한참 마실 땐 소주(燒酒)는 좀 밍밍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도수가 낮으니 톡 쏘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추울 때 서너 잔 만으로 몸이 훈훈해지기에도 역시나 좀 약하다. 성질 급한 사람이라면 감질 난다고 하기 십상이다.


희한하게, 그러다 귀국해서 조금만 지나면 금방 소주에 적응이 된다.

독한 보드카와 비교해 훨씬 많이 마실 것 같아도 그렇지가 않다. 도수에 따른 단순 산술적 비례가 안맞아 떨어진다. 마음보다 몸이 더 빨리 환경에 적응하는 게 분명하다. 

 


때때로, 찬바람이 불어오니 옛 추억들이 생각이 난다. 사람들은 흩어지고 하나하나의 장면들만 남았다. 

사실, 사람이 중요하지 보드카든 소주든 뭐가 대수랴.

겨울의 길목에서 언택트가 부디 하늘의 뜻이 아니길 바래 본다. 사는 게 영 인간적이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