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루묵은 죄가 없다
겨울철 별미로는 도루묵도 한몫한다.
지글지글 구이도 좋고 보글보글 찌개도 맛있다. 추운 날 도루묵 안주로 소주 한 잔 하면 몸도 마음도 금방 풀리게 마련이다. 바닷가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도루묵은 동해안에서 주로 나는 한류성(寒流性) 어종이다. 겨울철에 동해안으로 내려와 알을 낳는데 옛날에는 흔해 빠져서 버리던 물고기였다. 그러다 일본으로 수출되면서 대규모로 잡기 시작했다고 한다. 비늘도 없고 크기도 적당해 먹기에 딱 좋다.
도루묵이란 이름은 선조가 피난 중에 ‘묵’이라는 고기를 먹고 맛있어서 ‘은어(銀魚)’라 이름 붙였는데 환궁(還宮)해 먹어보니 그 맛이 아니어서 ‘도로 묵’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먹을 게 없을 땐 뭐든 맛있겠지만 배부르고 등 따시면 있던 입맛도 사라지기 마련이다. 분명, 산해진미(山海珍味) 임금님 수라상 위에선 도루묵이 초라해 보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도루묵이 가장 억울해할 말은 ‘말짱 도루묵’이다. 죄 없는 도루묵에 ‘말짱’을 갖다 붙여 괜히 실없는 도루묵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실컷 맛있게 먹을 땐 언제고 이렇게 막 불러도 되나 싶다. 어떻게 도루묵이 인간들도 모르는 그들의 변덕까지 헤아려야 할까.
비슷한 부류의 아귀를 생각하면 도루묵에 대한 구박이 더욱 두드러진다. 볼 품 없이 아가리만 크고 이름마저 괴기스러운데, ‘아귀찜 하나는 끝내준다’고 듬뿍 사랑을 받지 않나. 아귀의 생김새에 비하면 도루묵은 양반이니, ‘족보 한번 따져 보자’고 씩씩거릴지도 모르겠다.
좋으면 토를 달지 말아야 한다. 맛있는 겨울철 별미 ‘도루묵’은 ‘말짱 도루묵’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건 사람들이 저들의 잘못을 도루묵에 덤터기 씌우려는 수작이다. 도루묵은 사람을 속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