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씨앗
‘성모 수태고지’라는 성화가 있다.
마리아에게 예수를 수태했다고 천사가 알려주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천사는 새로운 시대가 곧 시작됨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럼, 봄의 시작은 언제부터라고 할 수 있을까?
3월이면 누구라도 봄이라 할 만하다.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땅에서 나오는 것도 이때이다.
지천에 새싹이 나고, 온갖 꽃들이 눈을 틔우며 새소리는 청량하다.
온 천지가 생명의 에너지로 꿈틀댄다.
좀 더 일찍 입춘(立春)이라는 주장도 일리 있다.
이름까지 ‘봄이 서는 때’로 딱 정했으니 더 그럴듯하다.
2월 4일에 봄볕을 느끼기엔 이르겠으나, 조상들이 태양의 움직임을 살펴
24절기를 짓고 그중 첫 번째로 삼은 건 다 뜻이 있을 것이다.
진짜 믿기 어려운 건 12월의 동지(冬至)가 봄의 시작이라는 주장이다.
동지 이후 조금씩 낮이 길어지는데, 이것을 양의 기운이 시작되는 것으로 본다.
이때 아주 작은 봄의 씨앗이 뿌려진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과거 우리 세시풍속에도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를 그리며 봄을 기다리곤 했다.
동지부터 9잎으로 된 9송이의 홍매화를 하루 한 잎씩 그리며 봄을 기다리는 것이다.
한겨울에 봄의 씨앗을 뿌리고 희망으로 때를 기다린 조상들의 지혜가 놀랍다.
자연의 순리(順理)는 늘 어긋난 적이 없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이 있듯, 봄은 겨울을 극복해낸다.
비록 희미하나마 그게 봄의 씨앗이라면 결국 찬란한 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