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수필(원고지3장)
이적 수
장 산
2021. 2. 14. 16:13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를 ‘이적(利敵) 행위’라고 한다.
실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피해만 주는 경우를 이렇게 비유하곤 한다.
바둑에서도 이와 비슷한 ‘표현이 있다.
예상치 못한 의외의 수(手)로 상대의 ‘귀를 붉게 만드는(耳赤)’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적 수(耳赤之手)’라고 부르는데, 그러나 의미는 반대이다. 적을 이롭게 하는 게 아니라 혼란스럽게 만들었을 때 사용된다.
당황하면 제일 먼저 귀가 붉어지니 그럴 만하겠다.
‘이적 수’는 대게 고수와 하수의 대결에서 나온다.
고수 혹은 하수끼리는 서로 보는 수준이 비슷해 이런 수가 나오기 어렵다.
수 읽기 능력이 뛰어난 고수는 하수의 수가 빤히 보이니 전전긍긍하는 사람은 늘 하수일 수밖에 없다.
고양이 앞에 쥐 신세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스포츠에는 이변이 있듯, 바둑에서도 기가 막힌 수로 상대의 귀를 붉게 만드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고수로선 만만하게 보고 장난치다가 된통 당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적 수’는 대체로 고수의 교만과 권태가 쌓여서 일어난다.
단순히 하수의 묘수(妙手)로만 되는 게 아니다. 고수가 될수록 외부의 상대는 줄어들고 내부의 적은 완강해진다.
이 게임에서 지면 결국 만만한 하수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아마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매 한 가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