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수필

걸레

장 산 2021. 2. 21. 22:27

출처: 프레시안(pixabay)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는 말이 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본래 용도가 걸레이니 어떻게 해도 결국 걸레일 것이다. 깨끗하면 그저 깨끗한 걸레’ 일뿐이지 때 좀 빠졌다고 쓰던 걸 다시 수건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집안의 걸레에도 나름 레벨이 있는 듯하다.

행주는 식기를 닦거나 식탁을 치울 때 이용하는데, 좀 작고 비교적 깨끗해 레벨이 제일 높다. 방이나 마룻바닥 닦는 데 사용하는 방 걸레는 중간 레벨로 크기가 행주 보단 커고 약간 지저분하다.

제일 낮은 레벨은 현관이나 베란다, 화장실 등에서 사용하는 걸레인데 크기도 커고 색깔도 좀 가무잡잡하다. 가끔 똥도 닦고 해서 똥걸레라 부르기도 한다.


 사실 평소 집안에서 걸레만큼 자주 사용하는 물건도 썩 많지는 않다.

옷은 날씨와 분위기에 따라 골라서 입는 것이고, 신발도 하나만 계속 신고 다니진 않는다. 스마트폰이나 TV 리모컨 정도나 돼야 걸레보다 좀 애용하는 물건 축에 들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걸레를 자주 이용하면서도 고마워하기는커녕 개밥그릇보다 대접을 안 해준다.

그저 필요할 때 한번 쓱 훔치고 어디 방구석에 처박아두면 끝나는 물건처럼 여긴다. 그러다가 필요하면 또 찾아서 임시방편으로 쓰고 다음번 생각 없이 아무 데나 던져놓고 잊어버리기를 반복한다.


 이런 버릇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경우가 이사할 때다.

좋은 집이든 아니든 하여튼 새로 이사 가는 집에 가지고 갈 물건 목록에 걸레는 없다. 새롭게 시작하는 마당에 실컷 사용해서 더러워진 걸레까지 챙겨갈 이유는 없을 것이다.

비싸거나 귀한 것도 아니고 필요하면 못 쓰는 천 쪼가리로 언제든 다시 만들면 되는 하찮은 걸레이지 않나.


 그러다가 덩치가 크고 값나가는 물건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그제야 허겁지겁 걸레를 다시 찾게 된다.

방바닥에 난 사람들 발자국도 없애야 되고, 가구나 TV에 먼지도 닦아야 된다. 싱크대도 다시 닦고, 베란다도 정리를 좀 해야 한다. 어질러진 현관과 신발장도 깨끗이 치워야 한다.

콜라나 음료수 잔을 엎질러 급히 닦을 때도 걸레가 필요하다. 이렇게 해서 다시 멀쩡한 수건이나 흰 러닝셔츠가 졸지에 걸레가 된다.


 걸레는 보기 싫고 더러운 것들을 저 혼자 다 끌어안아 처리해 주는 대가로 자신은 더러운 걸레가 되어 으슥한 곳에 버려진다.

더럽게 사용해 놓고, 더럽다고 무시당하는 것이다. 지저분한 걸 정리하는 게 제 소임(所任) 이어서 결국 자기 스스로 처리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순환논리의 역설(paradox)에 빠지고 만다.


 사실 걸레가 더러워야 걸레다운 걸레지 깨끗하면 자격미달이라 할 수 있다.

깨끗한 게 보기 좋다고 걸레가 깨끗하면 그건 제 할 일을 다 못했다는 것이니 결국 어딘가 지저분한 곳이 있다는 얘기일 수밖에 없다. 깨끗한 걸레는 좋은 걸레가 아니다.


 가끔 사람들 간에 걸레에 빗대어 다른 사람을 욕하는 경우가 있다.

인간관계나 일처리가 아주 지저분하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심한 욕지거리이다. 하지만 걸레 입장에서 보자면 크게 억울해할 일이다. 제대로 대접도 못 받으면서 온전히 희생하는 자신을 그런 인간에 비유하니 말이다.


 걸레는 더러운 집안을 제 몸을 바쳐 깨끗하게 만든다. 알고 보면 걸레 같은 인간보다야 걸레가 훨씬 낫지 않나. 걸레를 그렇게 막 대할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