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는 체감온도가 없다
3월 첫날, 봄비치고는 꽤 많이 비가 왔다.
겨울은 이제 끝인가 했는데, 웬걸 강원도에는 폭설이 내렸다고 한다. AI, 슈퍼컴퓨터 시대에도 기상 예측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은가 보다.
보통 비 온 다음날은 좀 쌀쌀하게 느껴진다.
물론, 겨울날 쌀쌀함과는 분명히 다른 기분이다. 겨울바람이 누굴 죽이려고 달려드는 강도 같다면, 봄의 쌀쌀함은 섣부른 마음에 사람이 저 혼자 민감하게 느끼는 호들갑이라고나 할까? 그러다가 언제인지도 모르게 ‘따뜻하다’ 싶으면 그땐 벌써 봄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사람들이 느끼는 건 체감온도이다.
몸이 그렇게 느껴서 ‘춥다’, ‘덥다’고 하는 것이지 온도계가 그렇게 가르쳐 준 게 아니라는 뜻이다. 느낌에는 기준이 있을 수 없으니, 좋게 말해 인간적이고 쉽게 말하면 변덕(變德)이다.
나무는 자기가 정한 기준에 온도가 맞으면 어김없이 꽃눈을 피운다.
사람에게는 마음 따로 몸 따로,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갈팡질팡한 날이겠지만 나무는 주저함이 없다. 나무에겐 겨울에 좀 따뜻한 듯해도 에누리 없이 겨울바람이고, 봄에 부는 바람은 어찌 됐든 봄바람이다.
혹간 일찍 피었다가 그를 시샘하는 눈에 묻히는 꽃을 보고 ‘때를 모른다’며 사람들이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때를 잘 못 안 건 꽃이 아니라 눈이다. 춘삼월의 눈은 누가 봐도 순리(順理)에 맞지 않다.
꽃은 시류(時流)에 흔들리지 않고 정확히 제 할 일을 한다. 흔들리는 건 꽃이 아니라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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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산의 <세상과 수필하기> : 네이버 블로그
생업에 감성이 메말라 잠시 손을 놓았다가 이제 생각을 나누고 싶어 다시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소소한 일상의 경험들과 함께 익숙한 생각들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글을 주로 500자 이내로,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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