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수필

쓸모없음의 쓸모

장 산 2021. 3. 26. 14:35

살면서 흔쾌히 쓰임을 받는다면 누구나 행복할 것이다.

크든 작든, 혹은 공적이든 사적이든 나름의 관계들 속에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인간의 최상위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임에 틀림없다.

 

최고의 행복감을 맛보기 위해서는 최선과 정성이 필요하다.

어떤 것이라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처절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성취하기 어렵다. 혹간 남 하는 게 쉬워 보여 아무나 할 수 있는 듯해도 실제 해보면 턱도 없는 일이다. 어떤 일이든 안 그런 게 없다.

 

물론, 나름 온갖 고생과 노력을 다했다고 해서 모두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 건 아니다.

반대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자기는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데 성과가 불만족일 수도 있고, 운 좋게 망외(望外)의 소득을 얻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잘난 사람들 눈에는 뒤처진 사람들의 능력과 정성이 부족해 보이고, 반대 입장에서는 결과에 대해 미심쩍어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 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기가 한 것은 크게 보이고 남이 이룬 것은 작게 보인다.

 

장자(莊子) ‘외물(外物)’ 편에 보면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말이 나온다.

사람이 땅 위에 서 있기 위해서는 기껏해야 두 발바닥만큼의 땅이면 충분하지만, 쓸모없는 땅을 다 파버린다면 누구라도 서 있기 힘들 것이란 내용이다.

 

쓸모없는 것의 쓸모에 대한 얘기인데, 요약하자면 쓸모없는 것 때문에 쓸모 있는 것이 생긴다는 의미쯤 될 것이다.

조금 비틀어보자면, ‘주연이 빛나는 것은 조연이나 엑스트라가 있기 때문이라는 의미라고나 할까?

 

예전 학교 다닐 때의 성격 좋은 몇몇 친구들이 생각이 난다.

모두들 어떻게든지 성적을 잘 받으려고 난리법석인데, 이 친구들은 속된 말로 깔려주기 위해자신들이 존재한다는 투였다.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너무 반가울 수밖에 없고 끝까지 버텨주기만을 간절히 바랄 지경이었다.

 

<닥종이인형>, 출처: 4000news.com

 

그러고 보면 번듯한 사람들은 우습게 보이던 사람들에게 마음의 빚을 진 셈이다.

만약 중요한 시기마다 쓸모없는 그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떻게 빛나는 주연이 될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 친구들이 갑자기 모두 독기를 품고 쓸모 있는 인간이 되겠다고 했으면 어쩔 뻔했나. 내 처지가 달라졌을 수도 있으니 식겁할뻔했다. 

 

불현듯 그 친구들이 그리워진다.

약소하지만, 다시 만나면 밥은 꼭 내가 사야겠다. 물론, 대놓고 ‘그때 깔려줘서 고맙다고 얘기하면 귀싸대기 맞기 딱 좋을 테니 다른 핑계를 대야 할 것이다. 그러면 친구는 몰라서 기분 좋고, 나는 알아서 흐뭇하겠지?

 

근데, 내 꼬락서니를 아는 친구가 자기도 밥 한 끼 살 정도는 된다고 하면 어쩌지. 얻어먹어야 되나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