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수필

어떤 결심

장 산 2021. 4. 3. 07:10

출처: 헬스조선

 

어릴 적에 어른이 돼도 절대 저렇게 되진 않겠다고 했던 다짐이 둘 있었다.

물론, 장래희망은 그 또래 아이들처럼 따로 있었다. 두 가지 모두 일견(一見) 너무 쉬운 것이었다. 하나는 배가 불룩하게 나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목욕탕에서 절대 때밀이에게 몸을 맡기지 않을 것이라는 작정(作定)이었다.


얼핏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내 딴에는 이유가 있었다.

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툭 튀어나온 배는 경제력의 상징이자 사람의 지위를 결정하는, 말 그대로 인격(人格)’이었다. 요즘 같아서야 건강을 위해 없애야 될 지방덩어리에 불과하지만, 당시에는 자랑할 만한 꽤 괜찮은 물건이었다.

말쑥한 양복에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은 배 나온 사장님이라면 시쳇말로 껌뻑 죽던 시절이었다.


부모님 세대보다야 나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보리밥을 쌀과 함께 섞어 먹던 시절이었다.

보리를 한 솥 삶아서 대소쿠리에 담아 매달아놓으면 우리는 엄마 몰래 한 줌씩 집어먹곤 했다. 보리가 좀 덜 섞인 쌀밥은 아버지 밥상에나 올리는 것이었고 우리들은 거무죽죽한 보리밥을 먹곤 했다.

쌀밥에 입맛을 다시다가 아버지가 배부르다며 숟가락을 내려 놓으시면 기다렸다는 듯 서로 먹겠다고 싸워댔던 생각이 난다. 그땐 왜 그렇게 배가 고팠는지 고구마, 감자, 무 등을 늘 입에 달고 살았었다.


달걀도 마찬가지였다. 아침마다 뒤뜰 콩깍지 더미에 달걀을 가지러 가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고, 소풍갈 때 삶은 달걀과 칠성 사이다는 꼭 챙겨야 될 필수품이었다.

솥 안에 넣어 밥과 함께 찐 계란찜은 별미여서 바닥까지 삭삭 긁어먹곤 했다.

이렇게 배고픈 시절이었으니, 번지러한 얼굴에 튀어나온 배는 풍요의 상징이자 모두가 부러워할 훈장 같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내겐 배 나온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생각을 별나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얼마나 게으르면 배가 저렇게 나오도록 살까?’하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배부른 부모의 자식들은 영락없이 지 애비를 닮아 어린 나이에 살이 포동포동하고 희여 멀끔한 게 몹시도 얄밉게 보였다.

그건, 새벽 해뜨기 전부터 해진 저녁까지 쉴 틈 없이 일하시던 마른 아버지의 모습과 대비되는 것이기도 했다.


목욕탕에서 때밀이에게 몸을 맡기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물론 시기적으론 좀 더 지나서의 일이지만, 때 미는 대() 위에 산 사람이 누워있는 모습이 여간 보기가 싫지 않았다. 축 늘어진 모양새가 죽은 사람 염하는 폼이나 잔칫날에 쓸 돼지 손질하는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때밀이의 손장난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비계덩이들의 움직임은 영락없는 돼지의 그것이었다. 어쩌다 손 발 다 놔두고 제 때도 닦기 싫어서 저러고 있나 싶었다.

여기다 배까지 불룩 나온 경우라면 정말 목불인견(目不忍見)의 꼬락서니가 아닐 수 없었다.


대략 이것이 소시(少時)적 품었던 결심의 요지였다.

아뿔싸! 그런데 이게 뭐야, 누군가 옆구리를 쿡 찌르는 순간 나는 과거로부터의 시간터널에서 빠져나와 몸뚱이를 옆으로 홱 돌린다.

 

아야, 살살 좀 하세요

한 두 번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세요

“.......”


동네 목욕탕에서 오늘도 때밀이에게 몸을 맡긴 나는, 눈 한 번 부라리지 못하고 지그시 감은 채 얌전한 돼지가 되어 누워 있다.

팔다리는 물론이고 은밀한 부위까지 맡긴 채 그의 지시대로 이리저리 몸을 뒤척인다. 환장할 노릇이다. 어릴 적 그렇게 혐오했던 모습이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이니 말이다.


갑자기 열심히 때를 문지르고 있는 어린 아이의 시선이 내 어린 시절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내가 그때 그 사람들을 바라보듯이 이제 그가 나를 흘겨보고 있다. 그리고 비쩍 마른 애 할아버지는 이놈아, 그 봐라. 넌들 뭐 별 수 있을 줄 알았냐!’라고 측은한 표정으로 쏘아붙이는 듯하다.


현재의 내 모습이 과거 내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던 모습이라는 것이 스스로를 참 허탈하게 만든다.

아주 작은 것 하나 실천하지 못하면서 무슨 낯으로 남 욕하고, 뭘 하겠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내일부터 당장 이놈의 때밀이 대()에서 내려와 올이 질긴 이태리 타올로 살갗이 벌겋게 문질러야겠다.

그러면서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방치해 왔던 권리를 되찾아, 이 몸의 주인이 바로 나임을 밝히고 새롭게 화해를 하자.

그리고, 임금 왕()자까지야 아니더라도 최소한 축 처진 똥배는 좀 관리를 해야겠다.


그게, 힘든 시절을 무사히 보내게 해 주신 여윈 부모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인 것 같다. 또 건강에도 좋지 않나.

실패한 결심을 다시 실행에 옮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