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렁이를 그리며
집 근처에 있는 연립주택을 지날 때마다 누구 생각이 슬그머니 일어나곤 한다.
옛날 그 자리엔 마당이 넓은 허름한 기와집이 있었다. 주위엔 진즉 현대식 고급 연립주택이 들어서 있었고, 한동안 그 집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더랬다.
인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그 집을 누렁이 한 마리가 지키고 있었는데, 대문은 늘 닫혀 있었다.
높지 않은 담 너머의 마당은 매일 똑같은 모습처럼 보였다. 그래도 개가 있는 걸로 봐선 눈에 띄지 않게 사람들이 들락거릴 거라는 짐작은 되었다.
집을 지킨다고 하지만, 황구(黃狗)도 찾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맨날 제 집에서 조는 게 일이었다.
가끔 장난기가 동할 땐 담너머로 얼굴을 내밀고 ‘누렁아, 또 자냐?’하고 놀리곤 했다. 그러면 자다가 나와선 눈을 껌벅거리며 컹컹 짖기 시작했다. 처음엔 웬 도둑놈인가 싶었을 것이다.
이렇게 몇 번 안면을 텄더니 나중엔 짖는 표정이 전혀 사납지가 않았다.
소리도 날카롭지가 않아 마치 안부를 묻는 인사처럼 친근하게 들렸다. 어떨 땐 얼굴을 내밀지 않고 그냥 지나가면서 ‘야, 자냐?’라고 해도, 목소리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순한 소리로 응답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 휴일에 낮술 한 잔을 하고 지나가면서 무심히 불렀는데 아무 대꾸가 없었다.
속으로 ‘이 놈이 내가 술 취했다고 무시하나?’ 생각하며 얼굴을 담벼락 위로 내밀었는데, 개집이 덩그러니 비어 있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마당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형제들이 보였다. 전에 못보던 차도 여러 대가 있었다. 뭐, 정확히 형제인지는 모르겠으나 느낌은 그런 것 같았다.
무엇을 삶는지 걸어놓은 솥에서는 김이 세차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이리저리 불도 지피고 찬거리를 만드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잔칫날 돼지를 잡을 때의 그 분위기처럼 보였다. 그 사람들도 어릴 때 그 집에서 그렇게 놀던 추억을 떠올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일이 있고 난 며칠 뒤에 그 집은 헐리기 시작했다.
집이 없어진 건 내 알바 아니었지만, 알고 지내던 누렁이가 사라진 건 못내 섭섭했다. 사실, 어디로 갔는지를 보진 못했으니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좋은 곳으로 갔다고 생각해야지' 할 뿐이다.
그래도, 너무 각중에 가 작별인사도 못한 건 좀 마음에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