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수필

누렁이를 그리며

장 산 2021. 4. 29. 12:46

 

출처:더채움학교

 

 

집 근처에 있는 연립주택을 지날 때마다 누구 생각이 슬그머니 일어나곤 한다.

옛날 그 자리엔 마당이 넓은 허름한 기와집이 있었다. 주위엔 진즉 현대식 고급 연립주택이 들어서 있었고, 한동안 그 집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더랬다.


인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그 집을 누렁이 한 마리가 지키고 있었는데, 대문은 늘 닫혀 있었다.

높지 않은 담 너머의 마당은 매일 똑같은 모습처럼 보였다. 그래도 개가 있는 걸로 봐선 눈에 띄지 않게 사람들이 들락거릴 거라는 짐작은 되었다.


집을 지킨다고 하지만, 황구(黃狗)도 찾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맨날 제 집에서 조는 게 일이었다.

가끔 장난기가 동할 땐 담너머로 얼굴을 내밀고 누렁아, 또 자냐?’하고 놀리곤 했다. 그러면 자다가 나와선 눈을 껌벅거리며 컹컹 짖기 시작했다. 처음엔 웬 도둑놈인가 싶었을 것이다.


이렇게 몇 번 안면을 텄더니 나중엔 짖는 표정이 전혀 사납지가 않았다.

소리도 날카롭지가 않아 마치 안부를 묻는 인사처럼 친근하게 들렸다. 어떨 땐 얼굴을 내밀지 않고 그냥 지나가면서 , 자냐?’라고 해도, 목소리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순한 소리로 응답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 휴일에 낮술 한 잔을 하고 지나가면서 무심히 불렀는데 아무 대꾸가 없었다.

속으로 이 놈이 내가 술 취했다고 무시하나?’ 생각하며 얼굴을 담벼락 위로 내밀었는데, 개집이 덩그러니 비어 있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마당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형제들이 보였다. 전에 못보던 차도 여러 대가 있었다. , 정확히 형제인지는 모르겠으나 느낌은 그런 것 같았다.


무엇을 삶는지 걸어놓은 솥에서는 김이 세차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이리저리 불도 지피고 찬거리를 만드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잔칫날 돼지를 잡을 때의 그 분위기처럼 보였다. 그 사람들도 어릴 때 그 집에서 그렇게 놀던 추억을 떠올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일이 있고 난 며칠 뒤에 그 집은 헐리기 시작했다.

집이 없어진 건 내 알바 아니었지만, 알고 지내던 누렁이가 사라진 건 못내 섭섭했다. 사실, 어디로 갔는지를 보진 못했으니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좋은 곳으로 갔다고 생각해야지' 할 뿐이다. 


그래도, 너무 각중에 가 작별인사도 못한 건 좀 마음에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