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차선에서 정속 운행하기
고속도로에는 신호등이 없다.
목적지까지 정지할 필요 없이 신속하게 갈 수 있도록 만든 도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거리도 없고 횡단보도도 없다. 일단 고속도로에 진입하게 되면 직진만이 허용된다.
단점이라면, 앞차가 막히면 오도 가도 못하고 같이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유턴도 안 되고, 옆길로 빠지지도 못한다. 무조건 딱 내 앞차가 허용해 주는 속도만큼만 나도 움직일 수 있다. 내차가 벤츠고 앞차는 똥차라도 우선권은 앞차에 있다.
고속도로에서 1차선은 추월차선이다.
2,3차선에서 주행하다가 앞차를 추월하기 위해서만 1차로로 들어설 수 있다. 말인 즉, 주구장창 1차선에서 달리는 건 불법이라는 의미이다. 주로 주행 차선을 달리다가 필요시에 잠깐 추월차선으로 들어와야 한다.
가끔 보면 뒤차들이 얼마나 밀렸는지 전혀 신경 안 쓰고 1차로에서만 거룩하게 달리는 차들이 있다.
그것도 교통법규를 지킨다고 80km에 딱 맞춰 정속(定速) 운행한다. 급한 볼 일이 있는 사람들로서는 환장할 노릇이다. 대게, 이런 경우 알면서도 어쩔 수 없어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몰라서 그런 경우도 있는 듯하다.
아주 오래전 고속도로 운전을 처음 할 때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2차선으로 주행하자니 화물차들이 무섭고, 그렇다고 1차선을 들락거리자니 그건 자신 없고 해서 그냥 1차선으로만 달린 것이다. 뒤통수는 좀 간지러웠지만 내 앞에는 차가 없으니 길이 시원했다.
뒤에서는 연신 헤드라이트를 비추고, 그래도 모른 척하니 답답한 사람이 우물 판다고 주행 차선인 2차선으로 알아서 추월해 갔다.
물론, 지나가면서 오만 인상을 다 쓰며 째려보거나 차를 급하게 내 앞으로 들이밀며 불만을 표출했다. 어쩔 수 없이 감수할 수밖에 없었지만 한편으론 ‘부족한 나를 사람들이 좀 도와주면 안 되나?’하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 처음부터 되지도 않게 법규를 위반해놓고 세상인심을 탓한 건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혹시 내 뒤에 있었던 차들 중에서 한시가 급한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그에 대해 책임질 수 있었겠나. 골목길에 아무렇게나 주차된 차량 때문에 소방차가 신속하게 불을 끌 수 없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때 굳이 형편이 안 되는데 무리하게 차를 운전할 필요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면 나도 편하고 남도 좋았겠다 싶다.
모르겠다, 나는 좀 불편했을지. 아무렴, 저 편하자고 막무가내로 남 불편하게 하는 것 보다야 법적으로나 혹은 상식적으로 훨씬 환영받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