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
상황에 따라 입장이 바뀌는 걸 비꼬는 표현 중에,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럴 만하지만 너는 그러면 안된다'는 뜻이겠다.
‘50보, 100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다’도 비슷한 의미이다.
이런 논란의 중심엔 ‘기준에 대한 해석의 문제’가 있다.
개별 입장이야 어찌 됐든 기준은 항상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는 논리일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런 논리들은 주로 내 입장을 설명할 때 활용된다.
나는 로맨스의 기준을 잘 지켰는데, 어찌 턱도 없는 불륜의 기준을 들이대느냐는 하소연인 것이다.
물론, 남에 대한 나의 결론은 언제나 ‘그게 그거’ 일 터이다.
아무리 남들이 ‘나름대로 로맨스를 추구했다’, ‘그래도 50보 밖에 안 도망갔다’,
‘겨가 똥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고 나름의 이유를 대도 소용없다.
내가 심판관으로 있는 한 이 완전무결한 논리는 무한 반복될 수밖에 없다.
노자 도덕경에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란 말이 있다.
‘도를 도라고 하면 그러한 도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도’는 확실히 ‘어떤 무엇’이겠지만,그걸 쉽게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순간 본래의 '그 도'와는 다른 '무엇'으로 변질된다는 대략 그런 의미이다.
'도'는 훨씬 포괄적이면서 경험에 기반한 무엇인데, 그렇게 규정함으로써 의미가 한정돼 버리기 때문이다.
무엇을 설명하려는 사람과 그걸 이해하는 사람 사이에는 '인식의 차이'가 존재한다.
설명하려는 '무엇'이 복잡하고 세부적일수록 그 간격은 더욱 커진다.
누군가 자기 입장에서 그걸 설명하게 되면 듣는 사람은 나름대로 단순화시켜 정리를 한다.
남의 복잡한 인과관계는 일일이 따져볼 수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성도 못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깐깐한 심판관이자, 억울한 피고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