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수필(원고지3장)

뛰어가나 걸어가나

장 산 2021. 6. 11. 23:53

출처: TBS

 

 

 며칠 전 아침에 시간이 급해 약속 장소로 좀 뛰어가야 했던 적이 있다.

택시 타고 가기도 애매한 거리여서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달리다 숨이 차면 다시 걷고 그러다 또 뛰고 그렇게 허겁지겁 목적지로 향했다.


 바쁘게 뛰어가는데 앞에서 웬 노인네가 천천히 걸어가는 게 보였다.

옆으로 지나가자니 가로수 때문에 길이 좁아 보여 좀 걸거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노인을 지나쳐 바삐 왔는데 하필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그때 막 빨간불로 바뀌어 버렸다.

열도 나고 마음도 급했지만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도리(道理)가 없었다.


 신호등이 바뀌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고개를 돌리는데, 아까 그 노인네가 옆에 서 있는 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허탈감이 치밀어 올랐다. 뛰어 오나 걸어오나 똑같아져 헛일 한 셈이니 내 딴에는 그럴 만도 했다.

 


 신호등을 원망하며 노인네 얼굴을 쳐다보는데, 미소 짓는 표정이 꼭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뭐가 그리 바빠?’라고 묻는 것 같더니, 이내 그렇게 바쁘면 미리 좀 서두르지 그랬어라는 핀잔으로 바뀌어 들렸다.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횡단보도를 후다닥 뛰어 건넜다.

저 노인네보다는 빨리 가야겠다는 보상심리가 작용했던 게 분명했다. 뛰면서, ‘꼭 시간이 임박해 서두르는 내 버릇이 또 도졌구나하는 자책감(自責感)이 들었다.


 약속이 있었으면 진작에 서둘러야 했다.

'Festina Lente, 미리 천천히 서둘렀으면 그리 급하게 서두를 일도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