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지 않은 일에 감사해야 할 이유
평소 우리는 의외로 자주 기도를 한다.
‘웬 기도?’ 하겠지만 알고 보면 이런저런 이유에서 수시로 뭘 갈구(渴求) 한다. 종교에 의지해 하는 경우도 있지만, 생활하면서 순간순간 그냥 바랄 때도 많다. 뭐, 절박함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오늘 장사나 사업이 잘 되고, 자식이 공부 잘하길 기대하는 건 흔한 일이다.
주식이 오르고 로또가 당첨되길 바라거나 직장에서 남보다 빨리 승진했으면 하고 기도할 수도 있다. 차를 가지고 일 보러 나갔을 때 소망대로 주차공간이 딱 있으면 반가울 것이다.
일상생활 중에 하는 기도는 ‘내게 좋은 일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대부분이다.
뭔가 당장 필요한 게 뜻대로 이뤄졌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라는 대로 되면 만족감에 행복해하곤 한다. 물론, 어디까지 만족할 것인가의 문제는 별개이다. 좋은 일은 끝이 없을 테니까.
그런데, 기도에는 ‘안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있다.
차를 운전할 때 사고 안 나게, 사업하면서 사기당하지 않기를, 혹은 운동하다 다치지 않도록 소망하는 경우 등이다. 코로나 백신(vaccine) 주사 맞고 부작용이 없도록 기도할 수도 있다.
뭔가 잘 되길 바라는 경우엔 그 결과를 금방 알 수 있다.
주말이면 로또가 됐는지 확인할 수 있고, 장사나 사업이 잘 되면 돈이 들어올 것이다. 승진이 되면 기도가 통했다고 할 수도 있다.
반면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경우엔 그 결과가 기도 때문인지를 알 수가 없다.
나쁜 놈이 무슨 짓을 하려다 중간에 접었을 수도 있고, 거의 일어날 뻔했다 여차저차 겨우 모면했을지도 모른다. 일어나면 그땐 이미 늦기 때문에 모르는 게 복일 수도 있다.
사실이지, 운동할 때 상대에게 맥없이 진 것보다 다치지 않은 걸 다행으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기대했던 휴가가 엉망이 됐음에도 교통사고가 안 난 것에 더 감사하기는 어렵다. 백신 부작용 여부도 마찬가지이다.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건 그냥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얼마 전 새벽에 차를 타고 가다 큰 사고를 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위해 정차하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덤프트럭이 우리 쪽으로 달려들었다. 아마 깜빡 존 것 같았다. 천만다행으로 먼지를 날리면서 아슬아슬하게 비켜갔다. 1초만 늦었어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같이 탔던 우리 일행은 오늘이 새로 태어난 날이라고 한마디씩 하며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왜 하필 그놈이 이 시간에, 여기서 졸았을까’라며 욕을 해댔다. 정신이 드니 더욱 소름이 돋았다. 조상이 돌봤는지 모르겠다.
그때 새삼 느끼게 됐다, 매일매일 뉴스에 나오는 사고 소식이 남 얘기가 아니란 걸.
그리고 본인 잘못이 없어도 불가항력적으로 원치 않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내게 일어나지 않아 무관심했지만 그건 동시대의 누군가에게 일어난 엄연한 현실이다.
아파트가 무너지고, 다리가 끊어지고, 비행기가 추락하고, 배가 침몰하고, 교통사고가 나고, 산사태가 나고, 불이 나고, 홍수가 나고, 강도를 만나고, 사기를 당하고, 놀다 다치고, 일하다 상하고, 길 가다 떨어진 간판에 맞고, 자신도 모르게 코로나에 걸리고....... 그 시간에 그런 장소에는 절대 있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겠나.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길 바라는 건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기가 점점 쉽지 않은 세상이 돼가는 듯하다.
평소 감사 기도를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하루하루 아무 탈 없으면 응답이 왔다고 알 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