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온갖 사람들이 있다.
생긴 모습도 천차만별이고 서로 경험도 특별하며 그래서 알고 있는 것도 모두 다르다. 가진 것도 차이나고 성격도 틀리며 태어나서 자란 곳도 완전히 똑같은 곳은 드물다.
이렇게 서로 다른 개인들이 사회라고 하는 조직을 통해 공통의 가치와 규범을 학습하는 과정이 역사이자 국가 형성 과정이다.
작은 조직이 점점 더 큰 사회에 속해 가다가 최종적으로 국가라는 가장 크고 절대적인 권위체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이성이 역사를 거쳐 오며 만들어낸 가장 효율적인 제도이다.
누구든 집에서는 가족이고 회사에서는 무슨 회사원이듯이 국가에서는 국민이 된다.
대통령은 국민의 선택에 의해 행정부 수반으로서 국가를 지도하게 되고,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이름으로 법을 만들고 행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입만 열면 항상 국민을 먼저 앞세운다.
그러면, 국민이 국가의 주인으로서 국회를 감시할 만큼, 혹은 행정관서의 일상 업무를 충분할 만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현장에서 일어나는 정치행위들을 다수가 바로 알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저런 일들을 다수가 모두 알기란 더욱 어렵다. 더군다나 다수가 그 숨은 맥락까지를 훤히 알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아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각종 신문·방송에 개인 미디어와 SNS 등 과거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빨리 정보를 습득하고 교환할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 아는 사람보다 둘 아는 사람이 적고, 둘 보다 셋 아는 사람은 더욱 소수라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다수가 소수의 관련자들보다 더 많이 알기란 어렵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실을 알게 되는 시간에 차이가 있어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아는 사람이 쌓여야 아는 다수가 된다는 의미이다. 이건 자연의 법칙에 가깝다 할 것이다.
소수에 속한다는 건 어떤 권리를 남몰래 누리기엔 좋을지 모르나, 세상을 움직이기엔 역부족이라는 의미이다.
특히 민주제도에서는 더 그렇다. 소수가 다수를 조종할 수 있을 진 몰라도 권력이 있든, 많이 가졌든 혹은 지식이 높든 상관없이 스스로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순 없다.
세상은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고, 특히 다수에 의해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아가게끔 되어 있다.
다수가 안다는 건 이미 그 일이 소수의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사회가 급변하고 역사가 요동치는 변곡점이 된다.
르네상스 시기 갈릴레오는 천체의 운행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이 아는 사실을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기껏 한다는 게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혼잣말로 되뇐 정도이다. 만약 끝까지 자기가 관찰한 천문학적 사실을 떠벌렸다면 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제거되었을 것이다.
당시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고 하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신성모독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때 지배계급이던 교회권력은 지구가 돈다는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걸 인정해서는 안 되었기에 그 사실을 알던 한 사람의 입을 막는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지식과 인간 이성이 발달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천체의 운행 법칙을 알게 되면서 소수의 교회권력이 좌지우지하던 시대도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만약 구한말 세계정세가 어떻고 일본의 정책과 의도가 무엇인지를 다수가 알고 있었다면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옆집에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가족을 버리고 만주 벌판으로 독립운동을 하러 떠났다는 걸 알았을 때, 그게 ‘쓸데없는 미친 짓’이 아니라 대의(大意)를 위한 일임을 다수가 자신의 일처럼 공감했더라면 독립이 더 빨리 왔을 수도 있다.
물론, 현재의 우리는 역사책을 통해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런 일은 비단 국가 중대사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작은 조직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조직이든 돌아가는 속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다수를 차지하는 평사원들이 소수의 과장보다, 또 과장은 사장을 포함한 임원들보다 전체 회사 사정을 더 잘 알기가 물리적으로 어렵다.
자고로 어느 분야와 조직, 어떤 일이든 사실(fact)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늘 다수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건 사실을 아는 소수가 아니라 모르는 다수이다.
문제는, 세상을 움직이는 다수가 자신들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다.
혹은, 다수인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게 모두 사실이라 믿는 경우가 많다. 아무튼 두 경우 모두, 모르는 다수의 의지가 향하는 종착지가 자신들의 기대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꼭 시간이 지나서야 알 수 있게 만든다.
사실은 말할 것도 없고 설사 잘못된 사실에 기반했더라도 다수가 탄 열차는 일단 출발하면 스스로 멈출 수가 없다.
점점 큰 에너지로 가속되어 돌진하다가 기존 질서라는 큰 구조물과 충돌하여 에너지를 잃고 나서야 멈추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엔 내부 배열만 달라졌을 뿐 속사정을 모르는 또 다른 다수가 굳건히 세상을 떠받힐 것이다.
사실을 아는 소수는 모른 체하고 모르는 다수는 자신들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걸 모른다.
이렇게 역사는 반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