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39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인다

세상에는 온갖 사람들이 있다. 생긴 모습도 천차만별이고 서로 경험도 특별하며 그래서 알고 있는 것도 모두 다르다. 가진 것도 차이나고 성격도 틀리며 태어나서 자란 곳도 완전히 똑같은 곳은 드물다. 이렇게 서로 다른 개인들이 사회라고 하는 조직을 통해 공통의 가치와 규범을 학습하는 과정이 역사이자 국가 형성 과정이다. 작은 조직이 점점 더 큰 사회에 속해 가다가 최종적으로 국가라는 가장 크고 절대적인 권위체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이성이 역사를 거쳐 오며 만들어낸 가장 효율적인 제도이다. 누구든 집에서는 가족이고 회사에서는 무슨 회사원이듯이 국가에서는 국민이 된다. 대통령은 국민의 선택에 의해 행정부 수반으로서 국가를 지도하게 되고,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이름으로 법을 만들고 행정부를 견제하..

일반 수필 2021.04.01

쓸모없음의 쓸모

살면서 흔쾌히 쓰임을 받는다면 누구나 행복할 것이다. 크든 작든, 혹은 공적이든 사적이든 나름의 관계들 속에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인간의 최상위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임에 틀림없다. 최고의 행복감을 맛보기 위해서는 최선과 정성이 필요하다. 어떤 것이라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처절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성취하기 어렵다. 혹간 남 하는 게 쉬워 보여 아무나 할 수 있는 듯해도 실제 해보면 턱도 없는 일이다. 어떤 일이든 안 그런 게 없다. 물론, 나름 온갖 고생과 노력을 다했다고 해서 모두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 건 아니다. 반대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자기는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데 성과가 불만족일 수도 있고, 운 좋게 망외(望外)의 소득을 얻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잘난 사람들 눈에는 뒤처진 사람들..

일반 수필 2021.03.26

예수님과 부처님

광장에서 긴 머리를 산발한 웬 남자가 고뇌에 찬 눈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외치고 있다. 몰려든 사람들로 주변이 복잡해져 지나가는 사람들이 불편하다며 눈을 흘긴다. 어떤 사람은 시끄럽다며 대놓고 미친놈이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구청에다 주민불편 신고를 하기도 한다. 그때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행색이 점잖지 않아 보이는 여자가 다가와 남자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린다. 수수한 젊은이가 여인을 위로하려는 순간 주위 사람들이 더러운 년이라며 욕을 한다. 남자는 '죄 없는 자 돌을 던지라'며 여자를 보호한다. 깨끗한 양복에 넥타이를 맨 사람들은 두 사람을 싸잡아 비난하며 상종할 필요가 없다고 외친다. 어떻게든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에서 저 혼자 약자와 불쌍한 사람의 편을 든다고 해서 세상이 ..

일반 수필 2021.03.24

세상은 만만한 사람을 좋아한다

그렇잖아도 살기 어려운데 코로나가 창궐해 설상가상으로 힘들어졌다. 옛날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버티던 보릿고개도 봄철 한때였는데, 이건 뭐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다. 일 년 내내 춘궁기다. 사실이지 요즘 너나없이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다. 백수는 백수대로, 회장은 회장대로 힘든 일이 없을 수 없다. 어느 누구라고 사는 게 만만하겠나. 문제는 사람들이 자기만 더 힘들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남들은 덜 스트레스받고, 더 재미있게 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의 함정에는 부와 지위, 학력에 상관없이 누구든 빠질 수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끼리 모이면 모두 나보다 잘 난 사람들처럼 보일 때가 있다. 격식이 있는 자리면 특히 더 그렇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모두 범상치 않아 스트레스 지수가..

까마귀를 위한 변명

요즘은 집 주변에서 까마귀 보기가 어렵다. 옛날에는 참 흔했는데 요새는 까치만 보이고 당최 눈에 띄질 않는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걸 눈치채고 산속으로 숨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닌 게 아니라 까마귀를 찾으려면 산으로 가면 된다. 산 위에 있는 군부대 주변에 많이 모여 살기 때문이다. 괴롭히는 까치도 없고, 잔반도 먹을 수 있으니 심신이 편해서 일 것이다. 또 거기선 사람이 그리워 까마귀라도 반갑게 맞아 준다. 언제부터인지 까마귀는 흉조(凶鳥)의 상징으로 고착화된 듯하다. 보기만 해도 ‘재수 없는 새’가 돼버렸다. 뭘 잘 잊어 먹을 때도 까마귀를 들이대 핀잔을 준다. 심지어 군기 빠진 군인들을 비유하는 ‘오합지졸(烏合之卒)’에도 까마귀가 들어간다. 까마귀가 이런 대접을 받을 만큼 나쁜 놈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늦가을 병아리떼

11월 말인데도 벌써 아침저녁 날씨는 ‘쌀쌀하다’기 보다는 ‘춥다’는 느낌이다. 마음이 아직 한낮의 가을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낙엽 떨어지는 걸 무심히 봤다. 떠나는 가을이 아쉬웠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집 부근에서 한 무리의 병아리 떼를 만났다. 삐약 삐약 거리며 2열로 아장아장 걷고 있었다. 하나같이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잠시도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 눈망울이 맑고 선해 사랑스러운 감정이 절로 일었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병아리 떼의 겉모양은 근데 좀 거무죽죽했다. 봄이라면 알록달록 하겠지만 날씨가 추우니 따뜻한 게 제일이겠다 싶었다. 그래도 기특하지, 쌀쌀한데 씩씩하게 걸어 다니니... 지나가도록 좁은 보도(步道)를 내어주고 잠깐 차도로 내려와 걸었다. 그저 흐뭇한 마음..

이적 수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를 ‘이적(利敵) 행위’라고 한다. 실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피해만 주는 경우를 이렇게 비유하곤 한다. 바둑에서도 이와 비슷한 ‘표현이 있다. 예상치 못한 의외의 수(手)로 상대의 ‘귀를 붉게 만드는(耳赤)’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적 수(耳赤之手)’라고 부르는데, 그러나 의미는 반대이다. 적을 이롭게 하는 게 아니라 혼란스럽게 만들었을 때 사용된다. 당황하면 제일 먼저 귀가 붉어지니 그럴 만하겠다. ‘이적 수’는 대게 고수와 하수의 대결에서 나온다. 고수 혹은 하수끼리는 서로 보는 수준이 비슷해 이런 수가 나오기 어렵다. 수 읽기 능력이 뛰어난 고수는 하수의 수가 빤히 보이니 전전긍긍하는 사람은 늘 하수일..

저 혼자 피는 꽃

봄이 되면 겨울 동안 모르고 지냈던 식물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연초록 잎들이 돋기 시작하면 ‘언제 저런 게 있었지’ 싶어진다. 허술한 담벼락에 초라하게 있던 개나리 가지에서 꽃잎 몇 개라도 피면 벌써 마음이 무장해제가 된다. 크든 작든, 화려하든 말든 그렇게 봄엔 여기저기서 기어이 자신을 알리는 것이다. 고향집 마당은 오래전에 시멘트가 깔렸다. 비가 오면 진창이 되고, 잡초 뽑기도 힘들어 자연스레 그렇게 됐다. 그런데도 잡풀은 빈집의 주인이 자기인 양 작은 수챗구멍 안에 늘 가득 차 있다. 옛날 맨발로 뛰놀던 마당이 없어진 건 아쉽지만 제멋대로 자란 풀을 보는 것보단 낫겠다 싶다. 어쩌지 못하는 현실 타협이다. 마당 앞 담벼락 밑에 또다른 시멘트 4 각형이 있는데, 그 틈에 목련이 한 그루 서..

일반 수필 2021.02.12

이빨 뽑던 날

미루고 미뤘던 이빨을 드디어 뽑았다. 한 번 빠지면 다시 나지 않는다는 생각에 흔들리는데도 미련하게 버텨왔다. 사실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질질 끈다고 좋아질 리 만무한 일이었다. 뽑고 나면 천상 임플란트를 해야 할 테니 어느 치과가 좋은지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많이들 알려 주긴 했는데 모두 자기가 아는 곳이 제일이라는 식이었다. 그래서, 그냥 예전부터 다니던 치과에 갔다. 이것도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는지 모르겠다. 마취 후 어금니를 뽑기 전에 전체 스케일링을 했다. 오래 안 와서 할 때도 됐고 새로 온 간호사가 권하기도 해서 그러자고 했다. 숨쉬기 곤란하고 이가 시려 몸에 힘들어가는 건 매번 똑같았다. 사실 스케일링 할 때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게 ‘불편하면 얘기하라’는 것이다. 입을 턱 빠지라 벌..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건 당연한 일일까? 의문의 여지없이 그래야 된다. 그러나 당연한 건지는 모르겠다. 부모가 어린 자식을 학대하고,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오늘 잠자리에 들어 내일 아침에도 전날처럼 다시 눈뜨는 일이 당연할까?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아주 장담할 순 없다. 누가 그럴 수 있겠는가? 하루하루 그게 꿈인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다리가 아픈 사람에겐 뛰는 것은 고사하고 걷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다. 목을 다친 사람에게는 침 넘기는 것도 당연하지가 않다. 고운 꽃들도, 아름다운 소리도 그걸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사람에겐 결코 당연한 게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숨을 쉬고, 기지개를 켜고, 밥을 먹고,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고, 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