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겨울 동안 모르고 지냈던 식물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연초록 잎들이 돋기 시작하면 ‘언제 저런 게 있었지’ 싶어진다. 허술한 담벼락에 초라하게 있던 개나리 가지에서 꽃잎 몇 개라도 피면 벌써 마음이 무장해제가 된다.
크든 작든, 화려하든 말든 그렇게 봄엔 여기저기서 기어이 자신을 알리는 것이다.
고향집 마당은 오래전에 시멘트가 깔렸다.
비가 오면 진창이 되고, 잡초 뽑기도 힘들어 자연스레 그렇게 됐다. 그런데도 잡풀은 빈집의 주인이 자기인 양 작은 수챗구멍 안에 늘 가득 차 있다.
옛날 맨발로 뛰놀던 마당이 없어진 건 아쉽지만 제멋대로 자란 풀을 보는 것보단 낫겠다 싶다. 어쩌지 못하는 현실 타협이다.
마당 앞 담벼락 밑에 또다른 시멘트 4 각형이 있는데, 그 틈에 목련이 한 그루 서있다.
나무 주위에는 잡풀이 자라지 못하게 크고 작은 돌멩이 몇 개를 좀 깔아놓았다. 물론 그래봤자 별 소용없겠지만 일종의 조형예술인 척 보이고 싶은 가소로움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목련은 시멘트 포장 전에 심었던 나무이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화장실이 불편한 어머니를 위해 집을 개조할 때 마당도 같이 포장했었다. 벌써 10년도 훨씬 더 됐다.
그 때는 나무라 할 것도 없이 작은 묘목으로 변변찮게 서 있었을 텐데 그걸 없애지 않았으니 여간 다행스러운 게 아니다. 그게 이제는 제법 굵은 가지를 두 갈래로 뻗어 봄이 되면 하얀 꽃을 오지게 피운다.
목련이 있는 자리 근처에는 예전에 석류나무가 있었다.
앞집 뒤뜰에 심은 나무지만, 어릴 적 앞마당에서 매일 꽃구경도 하고, 동생하고 담벼락에 올라가 빨간 석류도 따먹곤 했었다. 이제 석류나무는 진작에 없어졌고, 집엔 늙은 감나무만 남아있다.
그리고 보니 옆집 담벼락에 있던 무화과나무도 집이 비면서 언제인지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감나무에겐 목련이 없었다면 아무도 없는 집에 참 적막했을 성싶다.
3월이 되면 목련 꽃송이를 둘러싼 솜털은 색깔이 밝아지고, 점점 크게 벌어지기 시작한다.
겨울 내내 숨어있던 꽃망울이 대놓고 부풀어 올라 자꾸 밀어내기 때문이다. 꽃이 필 때가 되면 자기 소임(所任)을 다한 솜털은 기꺼이 떨어져 거름이 될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커지는 꽃봉오리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데, 피는 시간을 짜 맞추어 놓았는지 이제나 저제나 보는 사람만 애닳다. 그러다가 한 순간에 박상 튀기듯이 펑하고 터져 나올 것이다.
타이밍을 못 맞추는 건 사실 내 몫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지나면서도 화창하게 핀 목련꽃을 제대로 본 기억이 없다. 어찌 된 영문인지, 꽃망울이 맺혀 있을 때나 아니면 이미 떨어져 초라해진 꽃잎만 보았을 뿐이다. 정작 우리 집 마당에 활짝 핀 꽃송이는 보지 못하고 타지(他地)의 목련꽃만 보며 살아왔다.
혼자 남은 어머니만 새어 나온 불빛에 밤마다 눈물나게 흰 북향화(北向花)를 보았을 것이다. 먼저 떠난 지아비 생각, 멀리 있는 자식 걱정을 하염없이 했을 게 뻔하다.
‘바빠서 그랬다’는 식상한 핑계를 대기엔 마음이 흔쾌하지 않다.
이제 고향집엔 목련꽃을 보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벌써 3년이 지났다. 형제자매들이 바글거리며 살던 집은 이제 빈집이 됐고, 개도 없고 소도 사라진 지 오래다. 때 되면 빈집에서 목련만 저 혼자 피었다가 알아서 진다.
그 꽃 한 번 보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그걸 못했을까.
올봄에는 꼭 한 번 우리 집 마당에 흐드러지게 핀 목련꽃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