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수필

아버지의 자동차

장 산 2021. 2. 28. 13:47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고향에 다녀와서는 ‘부친이 변덕스럽게 화를 내시더라’라고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맨날 묻지 않아도 지 아부지 자랑을 하던 친구가 갑자기 딴 얘기를 하니 좀 의아했다. 건강은 아직 괜찮으시다니 그건 아닌 것 같고, 용돈도 자주 드린다니까 그것도 아닐 텐데 뭐가 마음에 안 드셨을까 싶었다.

 

친구 얘기는 이랬다. 17년 전에 자동차를 한 대 사 드렸다는 것이다.

지금껏 잘 타고 다니면서 동네에서 아들 잘 둬 호강한다는 얘길 듣고 하셨던 모양이다. 볼일이 생기면 가까운 곳이라도 어떻게든 차를 몰고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태워주면서 자식 자랑을 빼놓지 않고 하셨을 게 눈에 선하다.

 

출처:gettyimage

 

그러던 와중에 어느 날 차를 가져가라고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80대 중반의 나이까지 잘 탔는데 눈이 침침하고 브레이크 잡는 것도 둔해져 이젠 면허증을 반납해야겠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었다.

사실 군()에서도 안전을 위해 75세 이상 노인들에게 면허증 자진 반납을 권장하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고향집에 있는 중고차를 처리하기 위해 아버지 보는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바로 견인차를 불렀다고 한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갑자기 왜 그렇게 빨리 전화하느냐? 좀 더 타야겠다. 견인차 취소해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시더라는 것이다.

갑자기 바뀐 태도에 좀 황당해하며 아버지 얼굴을 봤더니 눈물까지 그렁한 얼굴 표정이셨다고 한다.

 

친구 얘기인즉, 오랫동안 탈 만큼 탔으니 폐차를 할 요량으로 견인차를 불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 입장에서는 그동안 애지중지하며 정이 들 때로 들은 차를 한순간에 없애버린다는 게 못 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실제로 매일 닦고 해서 17년이나 지난 차치곤 속은 어쨌거나 겉은 멀쩡하게 보였다고 한다. 그런 차를 지금 당장 눈앞에서 폐차시킨다니 영 마음이 내키지 않으셨을 것이다. 나이 먹어 쓰임새가 다하면 결국 사라져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퍼져 차가 아니라 당신 자신이 버려지는 느낌이었을 지도 모른다.

결국 노인네 좋을 대로 하시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차는 그 일로부터 며칠 후에 처리를 했다고 한다.

그 사이 당신께서 마음의 정리를 하셨을 게 뻔하다. 사람이나 차나 정들면 참 헤어지기 어려운 가 보다. 그래서 노인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정 뗀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친구 얘기를 듣고 보니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정이 많은 모친은 늘 화분에 꽃을 키워서 나눠 주곤 하셨는데 혼자 계시면서도 고양이나 개 등 동물을 기르지 않으셨다. 자식들이 권유해도 아주 오래전에 정들었던 개가 죽고 난 뒤로는 헤어지는 게 마음 아파 더 이상 들이지 않는다고 하셨다.

대체로 시골에서는 송아지처럼 큰 개를 키웠는데, 오래 같이 살다 보면 집안 사정도 알고 주인 마음도 알아채는 것 같기도 하다. 슬퍼 보이는 큰 눈을 겸연쩍게 껌뻑이는 모습을 보면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린 자식 둘을 먼저 떠나보내고 더 이상 생명 있는 피붙이를 잃는 아픔을 겪고 싶지 않으셨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정작 당신 돌아가실 때는 정을 다 못 떼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식 걱정하며 떠나셨다.

 

이후 친구는 아버지의 차를 폐차하려던 계획을 바꿔 필요한 사람에게 주기로 했다고 한다.

부친이 저렇게 마음을 쓰시는데 굳이 폐차까지 할 필요는 없겠다 싶었던 것이다. 본인으로서도 객지 생활하면서 처음 돈 벌어 사 드렸던 차라서 나름 사연이 있던 물건이었다고 한다.

 

차가 좀 오래됐어도 살아 있기만 하면야 어디에 있든 누가 타든 부자지간에 마음이 덜 허전하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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