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세상이 흉흉할 땐 미신이 창궐하고, 살기가 힘들면 사행심리가 만연해진다.
미래는커녕 현재도 불안정하니 한마음 기댈 곳이 필요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이다. 옛날 주택복권이 한때 서민들의 희망이 되었듯이 그래서 로또를 찾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용연향(龍涎香)은 흔히 바다의 로또라 불린다.
향유고래의 배설물이 바다에서 오랫동안 햇빛·소금기와 작용해 고급 향수의 재료가 된 게 용연향이다. 최고급 상품의 가격은 1kg에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용연향 줍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루왁 커피(luwak coffee)는 사향고양이가 커피콩을 따 먹고 배설한 똥에서 나온 씨앗을 갈아 만든 것이다.
고급 커피의 대명사로 여겨져 역시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자연에서 산출되는 양이 적어 루왁을 사육하여 생산하기도 하는데, 종종 동물 학대 문제로 비난받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두 사치품 다 더러운 배설물에서 나온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처음에 누가 어떻게 발견했을까 신기하기까지 하다. 과정이야 어떻든 하여간에 그걸 사람들이 좋아하게 되면서 그 배설물의 가치가 급상승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개똥도 약으로 쓰려니 없다’는 우리 속담도 있다.
흔해 빠지고 더러운 개똥이지만 그게 필요한 사람에겐 귀한 물건이 된다는 의미이겠다. 실제로 <동의보감>에도 허리 아프거나 상처 해독에 효과가 있다는데, 달리 방도가 없어 이리저리 찾아 헤맨 끝에 한 덩이라도 발견하면 큰 절이라도 하고 싶을 것이다. 심마니 산삼 발견한 것과 무엇이 다르랴!
배설물의 가치는 교환의 가치, 즉 자본주의의 전형이다.
사람들은 자기 옆 사람을 보고, 그 옆 사람은 또 그 옆 사람을 보는 식으로 물건의 가치를 비교한다. 누구도 서로 그게 왜 그래야 되는지 물어보지도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그렇다니까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일 뿐이다.
네덜란드에서는 한때 튤립 하나가 집 한 채 값에 해당하는 수 억 원까지 오른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너나없이 이 식물의 뿌리 하나라도 가지려고 난리를 치고, 심지어 입도선매(立稻先賣)까지 하면서 미친 듯이 가격이 상승한 것이다. 실제로 그래서 튤립 광란(tulip mania)이라 불린다.

그러다 어느 날 그게 아무것도 아니란 걸 하나 둘 깨닫기 시작하면서 철근콘크리트 같았던 거품이 순식간에 사그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후엔 누구도 꽃 한 송이에 그런 미친 가격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저 꽃은 꽃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제 자리를 찾아간 것이다.
가치란 참 상대적이다.
남아도는 사람에겐 별 볼일 없는 물건이지만, 없는 사람에겐 그렇게 애가 탈 수 없다. 키 큰 사람과 만나면 작아지게 되고, 작은 사람과 같이 있으면 없던 키도 생긴 듯하다. 많이 가진 사람을 보면 내가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나보다 적게 가진 사람을 생각하면 감사할 일이다.
고래 똥도, 고양이 똥도, 심지어 개똥마저 금처럼 귀할 수 있다.
그래서 금덩이도 어느 순간 빵 한 조각과 맞바꿔질 수 있다. 똥이든 금이던 가치의 속성이 그렇다는 걸 알면 조금은 편안해질 듯하다.
고급 용연 향수를 뿌리고 비싼 루왁 커피를 우아하게 한 잔 마시는 상상을 해본다.
그때는 '사람이 동물의 똥을 먹는다'는 것을 진하게 느껴볼 것이다. 그러면 그 희귀한 가치가 빛을 발해 덩달아 나도 고상한 인간이 된 듯한 기분에 빠져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