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수필

고향의 3월

장 산 2021. 3. 19. 17:54

3월의 고향 들판은 모두가 분주하다.

사람은 물론이고, 경운기도 빨리 돌아가고 새들도 부지런히 움직인다. 모두가 오늘 끝내지 않으면 안 될 듯이 바삐 서두른다. 하다못해 논두렁의 마른 풀도 타닥타닥 금방 타버린다.

 

비닐하우스에는 지난겨울을 따뜻이 보낸 참외가 이미 노랗게 익어가는 중이다.

한낮엔 벌써 출입문까지 열어둔 곳이 있다. 하지만, 겨우내 방치된 밭고랑에는 새로 소채라도 심어야 된다. 딱딱해진 흙덩이를 아래위로 뒤집어 토질을 부드럽게 하고 또 공기도 통하게 로터리를 잘 쳐야 한다.

 

 

왔다 갔다 밭 가는 경운기 소리가 크게 들렸다 좀 작게 들렸다 한다.

바람 때문일 수도 있고, 기온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주인이 고랑에 맞춰 급하게 혹은 천천히 엔진을 돌렸을 수도 있다. 주변의 다른 경운기 소리가 바리톤으로 깔리고 청명한 새소리는 소프라노 같다.

 

 

금방 뒤집어진 흙은 약간 차가운 느낌이지만 솜처럼 부드럽다.

맨발로 흙을 밟아보면 발가락 사이로 고운 입자들이 들어와 살살 애무를 하는 듯하다. 이랑마다 잘 정돈된 흙을 보면 참 보기 좋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밭 너머 작은 개울가에는 버드나무들이 연두색 물결을 이루고 있다.

멀리서 보면 나무 전체가 뿌연 연두색으로 뒤덮인 것처럼 보인다. 그림을 그린다면 어느 가지에 잎이 달렸는지 신경 쓸 필요 없이 그냥 연두색 물감을 슥슥 칠하면 될 듯하다.

 

 

마을 인근의 천년 고찰 선석사(禪石寺)로 가는 길은 이제 경치 좋은 드라이브 코스가 되었다.

한참을 걸어서 올라가야 하던 좁은 길이었는데 군()에서 주변 정리를 하면서 길도 바뀌었다. 산에서 내려오던 개울은 없어지고 대신 저수지가 생겼는데, 둘레길에 벚나무를 심어 경치가 좋다. 벚꽃이 피면 더욱 가관 것이다.

 

요즘은 세종대왕 왕자들의 태를 묻은 태봉(胎峯)이 절보다 더 유명해져 있었다.

우리 어린 시절엔 뭣도 모르고 그저 소풍 가서 놀기 좋은 곳이었는데 이젠 경복궁에서 이 산골까지 태 봉안 행사도 한다고 하니 참 세월 좋아졌다 싶다.

그래도 어린 시절에 맑은 물이 흐르던 개울을 따라 친구들과 가재도 잡고, 진달래도 따 먹던 추억은 뭘 어떻게 해도 대체 불가일 것이다. 그 많던 물이 각중에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세종대왕 왕자 태봉>

 

양지바른 논두렁에선 늙은 아낙들이 나물을 캐고 있다.

욕심이 많아서인지 얼마를 담으려고 비료포대까지 준비했다. 그거 다 담으려면 한나절도 더 걸릴 텐데 그러거나 말거나 쑥을 캐는지 수다 떨려 나왔는지 분간이 안 간다.

틀림없이 집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던 걸 들고 나왔을 게다. 이래저래 비료포대는 농촌 생활에서 참 요긴한 물건이다.

 

볕이 드는 담벼락에는 목련이 활짝 피었다.

아직 솜털을 달고는 있지만 순백의 꽃잎이 보는 사람 마음을 잠시나마 순수하게 만든다. 이렇게 원 없이 피었다 비 오는 어느 날 후드득 떨어질 것이다. 그때는 안 보는 게 나을 듯하다.

 

개울가의 살구나무도 여린 연분홍 꽃을 막 피웠다.

꽃말처럼, 수줍은 처녀가 남몰래 얼굴을 붉히듯이 저 혼자 일찍 폈다.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는 데, 마음이 푸근해지기엔 하나만이라도 충분했다.

 

개나리, 진달래는 주변에 없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딘 가 있을 텐데 아직 제철이 아닌가 싶었다. 복숭아, 사과, 배꽃도 때가 이른 듯했다. 아마 1~2주 지나 4월이 되면 곧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들이 어우러져 울긋불긋 꽃 대궐’을 지천에 차릴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나무들은 짙푸른 색으로 변하고, 꽃들은 만발하며 새들은 높이 울음 울 것이다.

생기 없던 밭이랑에는 새파란 파, 마늘, 상추 싹들이 올라올 것이고, 새까만 논두렁에도 파란 새싹이 온통 뒤덮일 것이다. 반기지 않는데도 이런저런 잡풀들은 어디든 꼽사리 끼어 억세게 자랄 것이다.

 

자연이나 사람이나 3월은 겨울과 이별하는 봄이면서 또 봄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시기이다.

2월에 비하자면 확실히 눈에 삼삼하게 봄이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고향의 3월은 모두가 분주해 보인다.

마치 마을 잔치를 준비하는 것처럼 다들 자기 소임을 여축없이 해낸다. 

 

곧 화려한 봄 잔치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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