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팔자가 상팔자란 말이 있다.
여름에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네 다리 쭉 뻗고 자는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이 든다. 밥걱정할 필요가 있나, 집 욕심부릴 이유가 있나. 안분지족(安分知足), 주는 대로 먹고 되는 대로 살면 그만이다.
좀 안 좋은 건, 목줄 길이만큼만 움직일 수 있다는 거다.
줄이 길면 긴 대로, 또 짧으면 짧은 만큼 에누리 없이 그 안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다. 가끔 낑낑거리며 목줄을 당기는 경우가 있지만 제 목만 아플 뿐이다.
나름 한쪽에다 측간(廁間)을 만들지만 공간이 제한되니 결국 더러운 개똥밭이 될 수밖에 없다. 엉덩이에 오물이 달라붙어있기 십상이다. 그 때문에 게으르고 지저분한 똥개라고 욕을 먹는다.
눈앞에 먹을 게 있어도 목줄이 안 닿으면 그림의 떡이다.
반가운 친구가 보여도 만날 수가 없다. 그저 컹컹거리며 소리로만 안부를 주고받을 뿐이다. 가끔 고양이나 쥐가 눈앞에서 까불어 성질을 내면 ‘시끄럽다’며 주인에게 되려 구박만 당한다.
목줄에 묶여 있는 개가 뭘 할 수 있겠나? 움직일 수가 있어야 뭐라도 하지.
먹을 걸 스스로 구할 수 있나, 용변 볼 곳을 가릴 수가 있나, 아니면 친구를 만날 수 있나. 밝은 눈과 예민한 귀가 있어 외려 더 갑갑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짖는 것도 반가워서 그럴지 모른다.
개를 묶어 두고서 뭐라고 욕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서양 역사가 증명하듯, 사람이라도 목줄에 묶이면 개나 소와 다를 바 없다. 노예선 밑창에 목줄로 묶인 인간들도 거기서 밥 먹고 또 똥오줌 위에 잠잘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하면, 자유로운 반려견은 얼마나 생기 있나. 눈치도 빨라 주인과 교감도 잘한다. 게다가 사람처럼 대접받으니, 밖에 묶여 있는 개 입장에선 몹시 억울할 법하다.
소유하기 위해 구속(拘束)하지만 그건 필연적으로 수동적인 적응을 강요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든 개든 움직여야 사는 동물이라면 매여있어 갑갑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개에 목줄을 채웠으면 적어도 게으르다고 욕은 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그렇게 만든 주인이 책임을 져야 합당하지 않나.
하여간, 집 밖에서 평생 짧은 목줄에 묶여 사는 개가 주인에게 사랑받는 반려견이 못 된 제 팔자를 원망할지, 아니면 무심한 집주인 탓을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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