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고 미뤘던 이빨을 드디어 뽑았다.
한 번 빠지면 다시 나지 않는다는 생각에 흔들리는데도 미련하게 버텨왔다.
사실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질질 끈다고 좋아질 리 만무한 일이었다.
뽑고 나면 천상 임플란트를 해야 할 테니 어느 치과가 좋은지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많이들 알려 주긴 했는데 모두 자기가 아는 곳이 제일이라는 식이었다.
그래서, 그냥 예전부터 다니던 치과에 갔다. 이것도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는지 모르겠다.
마취 후 어금니를 뽑기 전에 전체 스케일링을 했다.
오래 안 와서 할 때도 됐고 새로 온 간호사가 권하기도 해서 그러자고 했다.
숨쉬기 곤란하고 이가 시려 몸에 힘들어가는 건 매번 똑같았다.
사실 스케일링 할 때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게 ‘불편하면 얘기하라’는 것이다.
입을 턱 빠지라 벌린 상태에서 물까지 뿌리며 쇠꼬챙이로 잇몸을 찌르는데 어떻게 말하라는 건지, 원.
얘기인 즉슨, ‘끝날 때까지 입 딱 벌리고 조용히 있어라’는 것으로 들렸다.
그래 저래 이번에는 스케일링하는 내내 꾹 참았다. 끝나서도 잔소리를 안 했다.
예전 같으면 아프게 한다느니, 피가 나네 하면서 간호사를 구박했을 것이다.
사실은 어금니 뽑을 걱정이 앞서 얌전히 있었던 건데, 얼핏 보니 신입 간호사가 자기 실력에 뿌듯해하는 것 같았다.
덕분에, 나도 참 장한 일 했다 싶었다. 물론, 나라를 구한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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