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도움이 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건 인지상정(人之常情) 일 것이다.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알고 지내면 여러모로 편리할 게다. 흔쾌히 도와주든 마지못해 그러든 하여간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이런 접근법이라면,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을 가까이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도움은커녕 거추장스럽기까지 하다면 ‘차라리 안 봤으면...’ 할 수도 있다. 나도 힘든 데 굳이 필요 없는 사람까지 챙기기란 감정적으로 쉽지 않다.
‘아틱(Artic)’은 북극에서 조난된 한 남자의 처절한 생존 과정을 다큐 형식으로 그려낸 영화이다.
엄청난 눈보라가 수시로 불어대고 사방이 온통 눈 천지인 고립무원의 땅에서 주인공은 하루하루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서 사투(死鬪)를 벌인다.
그러다 인근에 추락한 헬기에서 중상을 입은 조종사를 구조하게 된다.
자신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까지 떠안게 됐으니 참으로 난감할 법하다. 설상가상은 이런 경우에 딱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부상자를 이끌고 함께 긴 생존 여정을 떠난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고 말한다. 물론 부상자는 구세주를 만난 게 분명하겠지만, 어쩌면 그도 그 말을 자신에게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 숨 쉬는 인간이 함께 있다는 게 설령 못 움직일지라도 그에게 살아야 하는 의미가 되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결국 둘 다 구조되었으니 주인공으로서도 고마울 만하다.
언제인가 TV에서 어떤 할머니가 젊어부터 수년간 중병(重病)을 앓다 떠난 남편이 ‘그땐 그렇게라도 오래 살았으면 하고 빌었다'는 말씀을 하시던 생각이 난다.
분명 애들 건사하며 살림하랴, 남편 간병하랴 한결 힘들었을 텐데도 자신의 존재 의미를 남편에게서 확인하는 듯했다.
‘내가 있어야 네가 있다’가 아니라 ‘당신이 있어 나도 있다’라는 말이 나만 있게 된 후에야 비로소 이해된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함께 있어 힘이 되는 존재’란 그 사람의 위치나 능력과는 무관한 듯하다.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달린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