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자주 들르는 목욕탕이 있다. 좀 오래되었지만 거리가 가까워 좋다. 게다가, 코로나 영향인지 여하간 사람들이 적어 한가하기까지 하다. 어떨 땐 독탕(獨湯)을 쓸 때도 있는데, 주인 입장에선 영 마음이 개운치 않을 듯하다.
아침 운동을 하고 목욕탕에 가면 꼭 하는 절차가 있다. 2천 원으로 샤워용품 하나를 사는 것과 500원짜리 동전 2개로 바꾸는 것이다. 동전은 집에 있는 저금통에 밥을 주기 위해서인데, 동전이 떨어지면 물론 돼지도 굶을 수밖에 없다.
그날도 평소처럼 동전으로 바꾸려는데 1천 원짜리 지폐가 하나밖에 없었다. ‘돼지가 오늘 밥을 굶겠구나’ 싶었는데 2달러짜리 지폐가 눈에 띄었다. 얼마 전에 행운의 상징으로 친구에게 받아 쟁여뒀던 거였다.
환율을 생각하면 2달러로 충분한데, 판매대 아저씨는 계산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맞는지 확신을 못하고 머뭇머뭇했다. '뜬금없이 웬 달러?’ 라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익숙한 얼굴이어서인지 웃으며 받아주었다. 자주 오다 보니 서로 안부를 물을 정도의 안면(顔面)은 생긴 터였다.
아저씨는 작은 매대(賣臺) 옆 쪽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듯했다. 몸이 왜소하고 늘 기력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나만 보면 동전을 딱 준비했다가 즐겁게 바꿔 주곤 했다. 하찮다면 하찮을 수 있지만, 뭐라도 남을 도와주려는 마음 씀씀이가 느껴졌다.
사실 나도 적당한 때에 2달러 지폐를 누구한테 줘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별거는 아니지만, 이번에 제 주인을 찾아갔다는 생각이다. 이제, 전해지는 얘기처럼 그에게 행운이 함께 하길 바래 본다.
(후기: 오늘 아저씨가 보이지 않아 궁금했는데, 아들이 사망했다는 비보를 전해 들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창창한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그저 강건하시길 기원합니다. /21.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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