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수필

걷기에 대한 단상(斷想)

장 산 2022. 9. 5. 14:52

 늘 그렇듯, ·오월은 집안에만 머물기 참 어려운 계절이다. 겨울을 이겨낸 신선한 기운(氣運)들이 천지에 넘쳐나기 때문이다. 온유한 햇살과 산들바람, 물 오른 나무와 만개한 꽃들, 분주히 움직이는 곤충과 새들, 반짝이는 시냇물과 파닥거리는 고기떼들... 이맘때의 풍경은 어떤 복잡한 마음의 꼬임이라도 순식간에 해체해 버린다. 알 수 없는 에너지에 순순히 동화(同化)되고 만다.

 

 충만한 생기(生氣)를 느끼며 걷는 일은 축복이다. 야외활동이야 사실 여름이 더하겠지만 높은 에너지는 사람을 쉽게 들뜨게 한다. 마음의 심란(心亂)은 에너지가 불균형일 때 오기 쉽다. 모자라거나 과하지 않을 때 마음이 평온해지는 건 익숙한 경험칙(經驗則)이다.

 

 가을이 이런 의미에서 걷기 좋은 계절임은 봄처럼 확연하다. 오래되거나 혹은 멀지 않은 과거를 반추하기엔 풀벌레 울고 달 밝은 가을이 제격일 수 있다. 스트레스받아 왜소해진 소나무에 잎 대신 방울만 가득하듯이 선선한 기운이 느껴질 때면 걷기는 곧잘 철학적 여정(旅程)이 된다.

 

 걷는다는 것은 머리를 하늘로 둔 직립(直立) 인간의 특권이다.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가 살아남은 것도 시야(視野)를 평면에서 공간으로 확장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광활한 공간에서 시선을 따라 끝없는 상상이 나래를 편다.

 

 걷다 보면 생각이 자유로워지는 걸 느낀다. 수많은 생각들이 어떤 경계도 없이 일어나고 연결되고 또 사라진다. 희한하게, 그러다가 불현듯 좋은 생각이 떠오르고 또 골치 아픈 일들은 단순해진다.

 

 모든 위대한 생각은 걷기에서 나온다고 한 니체의 말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것 같다. 인류가 두 발로 걸으며 오랜 세월 무의식 속에 축적해 온 신비한 능력이 때맞춰 발현될 수도 있을 법하다.

 

 루소는 <고백록>에서 산책(散策)’, 걸어 다니면서 생각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혼자서 도보여행을 할 때만큼 많이 생각하고, 살아 있다는 느낌을 생생하게 느낀 적이 없다.(...) 걷는 것은 나의 사고를 자극하고 활발하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 매력적인 풍경들, 자유로운 공기, 걸으면서 느껴지는 건강하다는 의식, 예속감을 느끼게 만드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 이 모든 것이 대담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것은 나를 소위 사물의 무한함 속에 던져 넣어 어떤 강요나 두려움도 없이 사물들을 마음대로 내 것으로 만들게 한다.”

 

 가끔 탄천(炭川)을 새벽이나 밤늦게  걷을 때가 있다. 아파트의 불빛들이 드문드문하다. 주변 소음이 적어 물소리가 더욱 또렷하게 들린다. 보지 않아도 돌멩이에 걸리는 물소리를 알아챌 수 있다. 지난번엔 가재가 큰 집게발을 쳐들고 겁 없이 길 한복판에 서있는 것도 봤고, 느릿느릿 기어가는 두꺼비도 만났다. 산에서 냇가 풀숲으로 들어가는 고라니도 먼발치에서 보고, 여기도 고라니가 있네!’ 했다.

 

 걸을 때면 주변 자극에 덜 민감하고, 좀 차분하며, 잠깐이나마 겸손해지는 나를 만나게 된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육체의 움직임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몸이 하나 되는 어떤 의식(儀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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