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스피에르(Robespierre) 하면 왕정(王政) 대신에 국민이 주인이 되는 공화정(共和政)을 건설하기 위해 공포정치를 펼쳤던 프랑스 혁명가로 알려져 있다.
검소한 생활과 확고한 신념으로 한 때 국민의 지도자가 되어 급진개혁을 주도하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반혁명 분자를 처형했던 그 방식대로 단두대(guillotine)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함으로써 다양한 정적들로부터의 도전을 비켜가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남은 건 자신의 정치 이상(理想)인 공화정도 아니고, 자기의 온전한 육신도 아니었다. 시대의 격변기에 누구보다 조심하고 고심하며 살았을 테지만 결국 그도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당시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역사의 급류(急流)에 맥없이 휩쓸려간 것이다.
최고 권력자가 되어서도 귀족의 특권 대신에 다수인 평민들의 권리를 위해 앞장서고, 그들을 위해 제 집도 없이 그들처럼 가난하게 살았음에도 왜 그는 그들에게서 죽임을 당했을까?
혹자는 ‘죽을죄를 지었으니 죽었겠지’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야 이미 역사적 사실로 나와 있으니 여기서 재론할 건 아니다.
다만, 평생 누린 것 없이 철저히 자기 검열을 했을 그가 왜 자기가 구원하고자 했던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는지가 사뭇 궁금할 따름이다.
로베스피에르가 애초 지도자로 등장하게 된 건 그의 검소하고, 신중하며, 인간의 평등한 권리에 대한 믿음, 다수인 국민이 소외되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 등이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대다수를 차지한 평민들은 왕의 백성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으로서 대접받는 그런 국가체제 건설에 큰 호응을 보냈을 게 뻔하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수히 많은 변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예측 불가하게 일어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기존 반혁명세력의 집요한 반발과 혁명의 속도·방향을 둘러싼 내부의 갈등, 정보의 상하좌우 전달 과정에서의 오해와 왜곡, 의도치 않게 발생한 안 좋은 사건들, 시류에 편승해 제멋대로 행동한 일부 세력의 일탈, 법의 집행과정에서 파생되는 공정성 논란, 정책의 시행과정에서 손해를 본 세력들의 불만, 뭐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무관심한 사람들, 자신의 권력기반만을 공고히 하려는 야심가, 프랑스의 약화를 부추기는 주변국 등.
사실 이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개인 로베스피에르의 인격이 자신을 구원해 줄 여지는 애당초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만일 완벽이 100이라 한다면 그가 신의 경지에 가까운 99를 갖췄다 해도 시기가 문제였을 뿐 언젠가는 꼬투리를 잡혔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던 평민들은 그에 비하면 훨씬 더 스스로에게 관대했을 것이며, 심지어 엊그제까지 그렇게 지지했던 로베스피에르를 금방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선장이 배를 바다에 띄워 노를 젓게 이끌 순 있지만, 바람과 파도까지 다스릴 순 없다.
풍랑에 배가 흔들리고 민심이 불안하면 인신 공양할 대상을 찾는 게 약한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난관(難關)을 헤쳐 나가기 위해 온 힘과 마음을 모으는 복잡한 과정 대신에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각양각색 사람들과의 관계가 얽히고설킨 평상시의 소소한 생활에서도 누가 얼마나 선하고 또 나쁜지 분간할 수 없는 데 격변의 시대엔 오죽하겠나.
아마 완벽한 신이라도 인간의 모습을 했었다면 사람들에게 끌려 나와 단두대에 세워졌을 것이다. 자신의 나약한 모습은 인간적으로 구원받기를 원하면서도 정작 다른 사람의 불완전함은 어떻게든 서로 꼬투리 잡는 인간을 신은 어떻게 보실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