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수다’는 좀 점잖은 표현이고 남자들끼리는 ‘노가리 깐다’라는 표현을 흔히 사용한다.
수다나 노가리나 ‘말이 많다’는 의미에선 매한가지이지만 하여간 제각각 쓰임이 있는 듯하다. 아닌 게 아니라, ‘수다 떤다’는 것과 ‘노가리 깐다’고 하는 건 느낌이 다르긴 하다.
여자는 매일 일정 단어 이상의 수다를 떨어야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전화로 한참 통화하다가도 다시 직접 만나서 실컷 얘기해야 속이 좀 풀린다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일 것이다. 남자도 노가리 까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옛날 잠시나마 엄청나게 말을 많이 하는 사람과 함께 한 적이 있었다.
말이 빠르기도 하지만 참 아귀가 잘 맞게도 했다. 요즘 말로 치자면 ‘투 머치 토커(Too Much Talker)’인 셈인데, 당시에는 말로 그 사람을 당해낼 자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백설공주’, 즉 ‘백만 인이 설설 기는 공포의 주둥아리’였다.
남 한 마디 할 때 너 댓 마디를 하고 거기다 목소리도 크고 앞뒤 논리까지 완벽하니 아무도 끼어들 엄두를 못 냈다.
그저 썩소를 지으며 마냥 듣는 게 고작이었다. 다만, 듣고 나면 내용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나고 ‘다 아는 얘기를 참 재미있게 한다’는 느낌만 남기 일쑤였다.
수다든 노가리까기든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가깝게 하는데 유용한 수단이 되는 건 맞는 것 같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입 딱 닫고 아무 말 안 하면 그만큼 썰렁한 것도 없을 것이다. 남자들끼리 모일 때 술을 먹는 것도 노가리를 잘 까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먼저 자기 생각을 털어놓게 만들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Yubal Harari)는 ‘사피엔스’에서 일류문명의 발전에 ‘뒷담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현생 인류인 사피엔스들이 모인 집단에서 누군가가 자신이 경험한 사건 혹은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 노가리를 깠을 때 그걸 다른 사피엔스가 상상하면서 인류의 인지혁명(認知革命)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아마, 그 노가리까기의 대부분은 다른 종(種)과의 대결을 포함한 자연에서의 생존에 관련된 얘기였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공통의 인식을 갖게 됨으로써 거기 모인 집단의 결속력이 생겨 결과적으로 다른 종을 물리치고 살아남게 되었다는 논리이다. 노가리까기를 통해서 공통의 문화를 형성하고, 문화가 지속되면서 역사가 형성되는 게 인류의 진화과정이라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긴 하다.
사실 언어와 문자의 역할이 그런 것인데, 그 이전에 말이 있었을 테고 말 중에서도 노가리까기가 제일 처음 나왔을 것이라는 의미와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 갓난애가 뭐라고 옹알거리면 엄마가 다 알아듣고 처리해주는 뭐 그런 메커니즘을 말한 게 아닐까. 만약 옆에서 누가 듣고 있다면 '뭔 소리 하는 거야?' 싶을 것이다.
한 가지, 수다도 좋고 노가리까기도 좋은 데 남 험담하기는 좀 자제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없다고 막 씹으면 다음번엔 나도 노가리처럼 안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유발 하라리가 주장한 ‘뒷담화’보다는 좀 가볍고 유쾌한 ‘노가리까기’가 인간적으로 마음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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