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수필

법 없이도 살 사람

장 산 2021. 5. 25. 00:32

출처:허핑턴포스트

 

 요즘 어디나 CCTV 없는 곳은 없다.

음식점·커피숍·학원·버스·지하철 등 실내는 물론이고, 길거리에도 웬만한 곳엔 전부 설치돼 있다. 또 차량에는 블랙박스가 필수 품목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제 실내외 어느 곳에 있든 촘촘하게 설치된 감시망을 절대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런 장비들은 사람이 볼 수 없는 걸 보여준다.

사람은 눈이 두 개뿐이어서 시야가 제한되지만 이것들은 360도를 다 볼 수 있다. 그것도 멀리 그리고 정확하게. 게다가 잠을 안 자는 건 물론이고 눈도 깜빡하지 않으며 24시간 내내 일을 한다. 삼복더위나 엄동설한도 상관없다.


 이런 이유로 간혹 착한 사람들 중에는 프라이버시가 침해당한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남한테 나쁜 짓 할 생각 눈곱만큼도 없는데 내 행동이 감시당하는 듯해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저것 안 가리고 무조건 한통속처럼 취급하니 인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만도 하겠다.


 이렇게 착한 사람은 흔히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 불리곤 한다.

굳이 법이 없어도 나쁜 짓 하지 않을 사람이니 법이 있으나마나 별 상관이 없다는 의미라 하겠다. 내가 선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 굳이 무엇을 하면 혼난다는 그까짓 법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착한 사람은 법이 없어도 살 수 있을까?

내가 교통법규를 지키며 운전 중인데 갑자기 누군가 내 차를 들이받아 놓고 다짜고짜 성질부리며 자기 잘못이 없다고 우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화가 치밀어 오르겠지만 대게 그런 사람한테는 말로도 몸으로도 당할 수가 없다.  


 착한 사람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만 해도 사람 안 다쳤으니 다행이다고 할 참이겠지만, 그 나쁜 놈들은 오히려 법대로 하자고 하면서 협박할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법조문을 들이대며 법 없이도 살 착한 당신을 현혹할 게 분명하다. 경우에 따라선, 착한 사람도 자기 결백을 주장해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 CCTV나 블랙박스는 바로 암행어사 박문수 같은 존재이다.

나쁜 놈들은 진흙탕 같은 원칙 없는 싸움에 능하고, 어거지·거짓말·말꼬리 잡기에 도통하기 때문이다. 제 큰 잘못은 감추고 남의 사소한 약점은 물고 늘어진다. 양심은 버린 지 오래여서 증거가 없으면 절대 인정 안 하고, 심지어 없는 증거도 만들어 낸다. 


 그래서 법 없이도 살 사람은 법을 이용하는 놈을 당할 수 없다.

법이 필요 없는 착한 사람은 법을 몰라도 되지만 그런 사람을 사기 치려는 놈은 십중팔구 법을 빠끔히 알고 있다. 자기가 사기꾼이란 걸 감추기 위해 사람들이 미심쩍어하는 질문에 그럴듯하게 답할 수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실상 법 없이도 살 사람은 법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착한 사람에겐 법의 울타리가 있어야 나쁜 놈들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우습게도 진짜 법 없이도 살 인간은 사기꾼일 뿐이다. 남에게 사기 치는 게 직업이라 자기가 당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아마 법이 허술하면 할수록 더욱 살판 날 것이다.   


 사실 법이란 건 도덕의 최소한이지 않나.

쉽게 말해, 사람들이 모여사는 사회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를 가려내기 위해 만든 타율적 장치이다. 그런데 그렇게 선을 넘었는지 아닌 지를 따지게 되면서 우리의 도덕률이 하향평준화돼버렸다. 온갖 법이 자꾸 만들어지는 걸로 봐선 가축처럼 점점 자율성을 잃어가는 듯하다. 


 모든 시험에는 과락이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최소한일 뿐이다.

과락을 면한 게 최고 점수가 아니듯이 법대로만 한다고 아름다운 세상이 되는 건 아니다. 그건 필요조건일 뿐이다. 그래서 사람 관계의 호의(好意)와 인정(人情)을 하찮게 생각하며 법만 들이대는 세상이 그렇게 품격이 높을 수가 없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 마음 놓고 생활할 수 있는 세상이 진짜 유토피아일 것이다.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지 않고 서로 선의(善意)를 가지고 대하는 그런 세상 말이다. 그래서 혹시 법을 들먹이는 사람이 있으면 그놈이 사기꾼이 아닌 지 먼저 의심해 볼 일이다.

 


 그리고 당신이 착한 사람이라면 법 없이 살 생각은 애당초 하지 말아야 그나마 택도 없는 봉변이라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세상이 그리 돼 버렸다. 

'일반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질문과 대답  (0) 2021.06.03
친구와 패거리  (0) 2021.05.30
운동 잘하는 비법  (0) 2021.05.20
마을 우물  (0) 2021.05.17
미끼  (0) 2021.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