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좀 껄렁한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걸 ‘패거리’라 부른다.
이들은 대게 남 신경 안 쓰고 작당(作黨)해 자기들에게만 이익이 되는 일을 대놓고 벌인다. 가치판단이 패거리 기준이라 개개인의 생각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결속력이 엄청 강하다. 대표적인 패거리로 깡패나 양아치가 있다.
‘친구’는 대체로 오래전부터 서로 친하게 지낸 사람들이다.
관계에서의 위계(位階)도 없고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도 크지 않다. 끼리끼리 다니긴 하지만 보통은 남 불편하게 할 정도는 아니다. 저마다 나름대로 판단하다 보니 전체를 위한 강제력은 좀 약하다. 하지만 굳이 말 안 해도 친구가 뭘 원하는지 잘 아는 사이다.
가끔 부모들 중에는 친구들과 뚤뚤 뭉쳐서 노는 것 좋아하는 자식을 ‘패거리’에 빗대 잔소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아는 그런 패거리는 아닐 것이다. 다 자식 잘 되라고 하는 얘기로 도리어 진짜 패거리처럼 놀면 안 된다는 노파심일 뿐이다.
패거리들끼리는 이유를 불문하고 한편이다.
설사 멤버 중 누군가 잘못했더라도 무조건 편들어 주고, 혹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떼거리로 달려든다. 한번 우리 편은 무조건 내 편이다. 흡사 들개나 하이에나 무리와 같다.
그런데, 패거리는 이렇게 아무에게나 시비 걸기 좋아하고 무식하게 행동하는 모습으로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도 존재할 수 있다. 이들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 패거리를 만들고 자기들의 논리를 제3자에게 확대재생산하여 상대편을 교묘히 나쁜 놈 혹은 무능한 인간으로 만든다.
이렇게 타기팅(targeting) 된 임의의 대상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소외되고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반대로, 자기들끼리는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근거 없는 우월감에 빠져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 점점 심해진다.
자신들이 작당해 만들어 낸 전과(戰果)를 의기양양하게 떠벌린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합리적 이성이 작동할 여지가 없다. 오히려 더욱 강하게 상대에 대한 적의(敵意)를 드러냄으로써 선명성(鮮明性)을 부각하려 한다.
결국, 이러한 패거리 문화는 ‘우리는 선이고 너희들은 악’이라는 극단적 이분법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자기들만이 진리요 정의라 믿는 패거리란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와 같다.
맹목적으로 달리기만 할 뿐 빨간불이든, 내리막이든 멈출 줄을 모른다. 일단 막 나가기 시작하면 패거리 내부에선 자율기능도, 또 거기서 도망칠 수도 없다. 오로지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도로를 이탈하여 뒤집히거나 어딘가에 부딪혀 아수라장을 만든 다음이 될 것이다.
물론, 아무도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후회하겠지만 그땐 이미 무책임한 변명만 될 뿐이다.
브레이크 없는 질주는 차 밖에서 보면 객관적으로 너무 불안하고 무모하다.
최악의 상황은 그런 닭대가리(chicken) 같은 생각으로 미친놈처럼 마주 보고 달리는 경우이다. 질주가 통하는 사회라면 다른 패거리들도 가만있진 않을 테니 말이다. 경적을 울리고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서로 '네가 먼저 비켜라'라고 외친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패거리가 더 무식하다고 내세우는 게 정말로 자랑스러워 그러는지 궁금하다.
혹시 남들이 제정신인 걸 겁쟁이라 착각하는 건 아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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