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수필

주차의 정의란 무엇인가?

장 산 2021. 7. 13. 18:22

 한 때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라는 책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하버드 대학 교수인 저자가 자신의 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유독 한국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우리가 그만큼 공정(公正)에 민감하다는 소리일 것이다.


 아파트 인근 편도 1차선 도로에서 마주 오는 차 때문에 순간적으로 움찔했던 일이 있었다.

불법 주차한 차들로 인해 중앙선을 침범할 수밖에 없었는데, 맞은편 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왔기 때문이다. 분명히 느낌상으론 들이미는 기분이었다.

 

출처: 더 팩트

 

 차를 급히 정지하면서 옆으로 바짝 붙어 비켰는데 은근히 화가 났다.

누굴 꼭 죄인 취급하는 거 같아서다. 자기는 정당한 권리가 있으니 중앙선을 침범한 네가 비켜라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그럼, 이미 무단 주차한 차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을 부정하겠다는 건가? 법규를 지키기 위해 다른 길로 돌아가라는 주장일까? 아니면, 신고를 해서 전부 견인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어쨌든, 경험으로 봤을 때 문제가 생기면 결국 법의 잣대를 들이댈 거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상황은 십분(十分) 이해하지만 잘못은 잘못이니 책임은 져야 한다는 논리가 적용될 것이다. 다 떠나서, 사고 나 좋을 건 없을 일이다.


 실제 이런 경우를 당하면 누구나 좀 억울하게 느껴질 만하다.

늘 다니던 도로를 평소처럼 이용한 죄밖에 없는데 어느 순간 비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날 일진(日辰)이 나빠 영악한 사람 만난다면 법적으로 옴팡 뒤집어쓸 수도 있다.


 그렇다고, 분한 마음에 씩씩거려 봐야 아마 다른 사람들에겐 이미 익숙한 레퍼토리로 들릴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반복되는지 모르겠다. 늘 그렇듯이, 그러다가 행()인지 불행인지 사고가 나고 민원이 쌓이면 그제야 뭔가 후다닥 바뀔 것이다.


 살다 보면, 무슨 일을 할 때 어떤 선택을 하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을 묵과(默過)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특히, 다수가 관련되거나 관습화 된 일일 때 순응(順應)이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개인이 잘잘못을 따지기도 어렵거니와 그걸 바꾸기는 더욱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게 그렇게 된 데에는 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아파트 인근 갓길에 주차했던 차들도 주차공간이 부족해 그랬을 수 있다. 불법주차 차량과 주행차량 모두 선의의 피해자라 할 만하니, 욕은 집을 지은 건설업자가 먹어야 합당할 것 같다. 그러면 건설업자는 주택조합에서 요구하는 대로 건축했다 그럴 테고, 또 주택조합은 당시 건축법을 따랐다고 주장할 것이다.

말인즉, 세대수를 초과하는 자동차 보유가 문제라는 논리이다. 차는 입주민들이 산 것이니 결국 주민의 개인주의가 원죄(原罪)인 셈이다.


 이렇게 욕먹을 대상을 찾다 보면 밑도 끝도 그리고 한()도 없다.

조금씩 다 책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경계는 희미하다. 분명한 건, 사정이야 어떻든 현장에서 걸리면 그 조금씩 물린 책임을 혼자 다 져야 한다는 점이다. 야박하게도 법은 드러난 현상에 대해서만 왈가왈부할 뿐이다.


 결국, 주차의 정의는 단순히 법으로만 지켜지는 건 아닌 듯하다.

구조가 바뀌기 전까진 서로 조심하는 게 좋든 싫든 합리적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할까, 내 자유도 중요하지만 남의 행복도 생각해야 서로 편할 것이다. 오늘은 내가 넓은 도로에서 가지만 내일은 좁아진 반대편에서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좁은 도로에서 죄 없는 둘이 괜히 인상 쓰는 것 보다야 서로 기분 좋게 지나가는 게 훨씬 덜 바보같은 일임이 틀림없다.

조금만 양보하면 만사 편할 일이 이런 단순한 문제 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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