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 인생이 풀리면 그것만큼 뿌듯한 일도 없을 것이다.
오래 살면 살수록 그렇게 되긴 더욱 어려울 게다. 계획은커녕 하루하루 살기도 바쁜 게 보통의 인생인데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는 노인네 중에 90대 중반인데도 정정하신 영감님이 계시다. 할머니도 80대 후반이시다.
기가 얼마나 세신지 노인이라 부르기 죄송할 정도다. 삼복더위나 엄동설한에도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집에서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니신다.
게다가 아직 총기(聰氣)가 넘치셔 삶의 지혜를 후배들에게 잘 전수해 주신다.
고리타분하지 않게 농담을 섞어가며, 그리고 넛지(nudge)처럼 은근히. 그래서, 주변에 늘 후배들이 모여든다.
영감님이 아주 싫어하는 게 후배한테 밥 얻어먹는 것과 골프 칠 때 지는 것이다.
평소 자길 중늙은이로 대접하는 걸 참질 못하신다. 그 덕에, 70대 후반 후배는 맨날 골프도 지고 밥도 얻어먹어 상늙은이가 된 기분이라며 심각하게 허탈해한다. 설상가상으로, 밥 먹을 때 주량도 못 따라간다.
근데, 이 영감님이 최근 ‘인생의 계획이 틀어졌다’고 털어놓으신 것이다.
아니 철저하게 자기 계획대로 사신 분인 줄 알았는데....... 이미 20년쯤 전에 평생을 모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모두 분배하고, 당신은 최소한의 몫으로 독립생활을 하고 계셨더랬다.
말씀인 즉, 당신이 아흔 이상 사실 줄을 그땐 예측을 못했다는 것이다.
후배들과 즐겁게 어울리고, 신세 안 지고 사시려니 쓸 돈이 얼마 안 남았다는 취지였다.
글쎄, 그 정도 여유는 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새삼 나이를 들먹이시는 게 좀 생뚱맞게 들렸다.
요즘 기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 은근히 에둘러 표현하신 것 같기도 했다.
뭐, 돈이야 후배한테 또 따시면 되니까 그런 걱정 마시고 내내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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