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수필(원고지3장) 63

완벽한 사람은 없다?

흔히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다’고들 얘기한다. 아무리 훌륭해도 살다보면 약점 한 두 가지는 있기 마련이다. 신이 아닌 인간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을까. 마치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명제처럼 당연하게 들린다. 완벽(完璧)이란, 이 단어가 뜻하는 ‘흠이 없는 구슬’보다도 개념적으로 훨씬 더 이상적인 말이지 않나. 어떻게 보면 그래서 이 말은 역설적이다. 완벽할 수 없는 게 인간이라면 그런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실수가 애초부터 불완전한 인간의 몫이 되면서 용서는 신의 전유물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말인 즉 참 인간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말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제3자가 시시콜콜 꼬투리를 잡을 때 들이미는 반박불가 논리로 자주 인용된다. 그리고 그다음엔 '..

세상은 만만한 사람을 좋아한다

그렇잖아도 살기 어려운데 코로나가 창궐해 설상가상으로 힘들어졌다. 옛날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버티던 보릿고개도 봄철 한때였는데, 이건 뭐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다. 일 년 내내 춘궁기다. 사실이지 요즘 너나없이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다. 백수는 백수대로, 회장은 회장대로 힘든 일이 없을 수 없다. 어느 누구라고 사는 게 만만하겠나. 문제는 사람들이 자기만 더 힘들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남들은 덜 스트레스받고, 더 재미있게 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의 함정에는 부와 지위, 학력에 상관없이 누구든 빠질 수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끼리 모이면 모두 나보다 잘 난 사람들처럼 보일 때가 있다. 격식이 있는 자리면 특히 더 그렇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모두 범상치 않아 스트레스 지수가..

훈수의 3원칙

주변에 보면 여기저기 참견하기 좋아하는 별나게 오지랖 넓은 사람이 꼭 있다. 자기 딴에는 모르는 게 없다. 목소리도 크고 말발도 세서 멍하니 듣다가 보면 훅 휩쓸려갈 수 있다. ‘참견(參見)’을 좀 점잖게 표현하면 ‘훈수(訓手)’라고 할 수 있다. 본래는 바둑·장기판에서 구경꾼이 이래라저래라 한 데서 나온 말이지만, 일상생활에서도 폭넓게 사용되곤 한다. 오래전 그때나 지금이나 제삼자가 쓸데없이 끼어드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훈수에는 3가지 원칙이 있다. 첫 번째가 ‘재미있어서 한다’이다. 두는 사람이 전전긍긍할 때, ‘여기 놔봐라’ ‘저기 둬라’고 훈수를 둬보면 너무 재미있다. 그래서 옛말에 ‘훈수는 뺨 맞고도 둔다’고 하지 않나. 무리에 섞여 막 소리치다 보면 내가 특별한 누구인 것 같아 엔돌핀이 막 솟..

꽃에는 체감온도가 없다

3월 첫날, 봄비치고는 꽤 많이 비가 왔다. 겨울은 이제 끝인가 했는데, 웬걸 강원도에는 폭설이 내렸다고 한다. AI, 슈퍼컴퓨터 시대에도 기상 예측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은가 보다. ​ 보통 비 온 다음날은 좀 쌀쌀하게 느껴진다. 물론, 겨울날 쌀쌀함과는 분명히 다른 기분이다. 겨울바람이 누굴 죽이려고 달려드는 강도 같다면, 봄의 쌀쌀함은 섣부른 마음에 사람이 저 혼자 민감하게 느끼는 호들갑이라고나 할까? 그러다가 언제인지도 모르게 ‘따뜻하다’ 싶으면 그땐 벌써 봄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 사람들이 느끼는 건 체감온도이다. 몸이 그렇게 느껴서 ‘춥다’, ‘덥다’고 하는 것이지 온도계가 그렇게 가르쳐 준 게 아니라는 뜻이다. 느낌에는 기준이 있을 수 없으니, 좋게 말해 인간적이고 쉽게 말하면 변덕(變德)..

거미줄 위의 인생

요즘은 온갖 정보가 넘쳐난다. 가히 정보의 홍수 시대라 할 만하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없는 게 없다. 과잉 공급된 엄청난 정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밀려오다 보니 어떤 게 진짜인지 구별하는 것도 큰일이 됐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시시각각 쏟아지는 정보들에 원하든 원치 안 든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현실과 비현실이 혼재된 네트워크 안에서 다른 사람의 취향, 행동, 생각들을 엿보거나 비꼬면서 쾌감을 얻고, 내가 해보지 못한 경험들과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그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 동시에, 자기의 시시콜콜한 얘기를 생면부지의 다중(多衆)에게 공개하는 데도 전혀 주저하거나 부끄러움이 없다. 지위고하,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보며 정보를 검색하고,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보고, 음악을 듣고..

까마귀를 위한 변명

요즘은 집 주변에서 까마귀 보기가 어렵다. 옛날에는 참 흔했는데 요새는 까치만 보이고 당최 눈에 띄질 않는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걸 눈치채고 산속으로 숨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닌 게 아니라 까마귀를 찾으려면 산으로 가면 된다. 산 위에 있는 군부대 주변에 많이 모여 살기 때문이다. 괴롭히는 까치도 없고, 잔반도 먹을 수 있으니 심신이 편해서 일 것이다. 또 거기선 사람이 그리워 까마귀라도 반갑게 맞아 준다. 언제부터인지 까마귀는 흉조(凶鳥)의 상징으로 고착화된 듯하다. 보기만 해도 ‘재수 없는 새’가 돼버렸다. 뭘 잘 잊어 먹을 때도 까마귀를 들이대 핀잔을 준다. 심지어 군기 빠진 군인들을 비유하는 ‘오합지졸(烏合之卒)’에도 까마귀가 들어간다. 까마귀가 이런 대접을 받을 만큼 나쁜 놈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늦가을 병아리떼

11월 말인데도 벌써 아침저녁 날씨는 ‘쌀쌀하다’기 보다는 ‘춥다’는 느낌이다. 마음이 아직 한낮의 가을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낙엽 떨어지는 걸 무심히 봤다. 떠나는 가을이 아쉬웠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집 부근에서 한 무리의 병아리 떼를 만났다. 삐약 삐약 거리며 2열로 아장아장 걷고 있었다. 하나같이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잠시도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 눈망울이 맑고 선해 사랑스러운 감정이 절로 일었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병아리 떼의 겉모양은 근데 좀 거무죽죽했다. 봄이라면 알록달록 하겠지만 날씨가 추우니 따뜻한 게 제일이겠다 싶었다. 그래도 기특하지, 쌀쌀한데 씩씩하게 걸어 다니니... 지나가도록 좁은 보도(步道)를 내어주고 잠깐 차도로 내려와 걸었다. 그저 흐뭇한 마음..

이적 수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를 ‘이적(利敵) 행위’라고 한다. 실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피해만 주는 경우를 이렇게 비유하곤 한다. 바둑에서도 이와 비슷한 ‘표현이 있다. 예상치 못한 의외의 수(手)로 상대의 ‘귀를 붉게 만드는(耳赤)’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적 수(耳赤之手)’라고 부르는데, 그러나 의미는 반대이다. 적을 이롭게 하는 게 아니라 혼란스럽게 만들었을 때 사용된다. 당황하면 제일 먼저 귀가 붉어지니 그럴 만하겠다. ‘이적 수’는 대게 고수와 하수의 대결에서 나온다. 고수 혹은 하수끼리는 서로 보는 수준이 비슷해 이런 수가 나오기 어렵다. 수 읽기 능력이 뛰어난 고수는 하수의 수가 빤히 보이니 전전긍긍하는 사람은 늘 하수일..

이빨 뽑던 날

미루고 미뤘던 이빨을 드디어 뽑았다. 한 번 빠지면 다시 나지 않는다는 생각에 흔들리는데도 미련하게 버텨왔다. 사실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질질 끈다고 좋아질 리 만무한 일이었다. 뽑고 나면 천상 임플란트를 해야 할 테니 어느 치과가 좋은지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많이들 알려 주긴 했는데 모두 자기가 아는 곳이 제일이라는 식이었다. 그래서, 그냥 예전부터 다니던 치과에 갔다. 이것도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는지 모르겠다. 마취 후 어금니를 뽑기 전에 전체 스케일링을 했다. 오래 안 와서 할 때도 됐고 새로 온 간호사가 권하기도 해서 그러자고 했다. 숨쉬기 곤란하고 이가 시려 몸에 힘들어가는 건 매번 똑같았다. 사실 스케일링 할 때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게 ‘불편하면 얘기하라’는 것이다. 입을 턱 빠지라 벌..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건 당연한 일일까? 의문의 여지없이 그래야 된다. 그러나 당연한 건지는 모르겠다. 부모가 어린 자식을 학대하고,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오늘 잠자리에 들어 내일 아침에도 전날처럼 다시 눈뜨는 일이 당연할까?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아주 장담할 순 없다. 누가 그럴 수 있겠는가? 하루하루 그게 꿈인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다리가 아픈 사람에겐 뛰는 것은 고사하고 걷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다. 목을 다친 사람에게는 침 넘기는 것도 당연하지가 않다. 고운 꽃들도, 아름다운 소리도 그걸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사람에겐 결코 당연한 게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숨을 쉬고, 기지개를 켜고, 밥을 먹고,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고, 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