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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단배와 바람

바람의 힘으로만 움직이는 요트 시합을 본 적이 있다. 돛으로 동력을 얻으니 바람이 불어야 잘 달릴 수 있는 건 당연하다. 특별히, 뒤바람이 불어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말 그대로, 순풍에 돛단배가 되는 것이다. 노나 엔진이 없어 오로지 바람에만 의존하는 돛단배는, 그러나 갈 때 순풍(順風)이면 돌아올 땐 반드시 역풍(逆風) 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성난 파도까지 세일러(sailer)의 의지를 시험한다. 망망대해에서 실제 이런 상황을 맞는다면 누구라도 간절히 기도를 올릴 게 틀림없다. 놀랍게도, 뱃사람을 진짜 절망 상태에 빠트리는 건 역풍이 아닌 무풍(無風)이란 점이다. 고생은 되겠지만, 그래도 역풍은 움직일 힘을 준다는 것이다. 역풍 속에서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앞으로 전진하는 힘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

<유명 수필가 소개 4> 윤세영, "일상의 기적"

덜컥 탈이 났다. 유쾌하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귀가했는데 갑자기 허리가 뻐근했다. 자고 일어나면 낫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웬걸, 아침에는 침대에서 일어나기조차 힘들었다. 그러자 하룻밤 사이에 사소한 일들이 굉장한 일로 바뀌어 버렸다. 세면대에서 허리를 굽혀 세수하기,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거나 양말을 신는 일, 기침을 하는 일,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 내게는 더 이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별수 없이 병원에 다녀와서 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냈다. 비로소 몸의 소리가 들려왔다. 실은 그동안 목도 결리고 손목도 아프고 어깨도 힘들었노라, 눈도 피곤했노라, 몸 구석구석에서 불평을 해댔다. 언제나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던 나의 몸이 이렇게 기습적으로 반란을 일으킬 줄은 예상조차 못했던 터라 어쩔 줄 몰라 쩔..

형과 아우

형제는 혈연으로 엮인 아주 가까운 사이이다. 안 그런 경우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한 배에서 나 젖먹이 때부터 함께 한다. 강아지들이 꼬물꼬물 티격태격하며 성장하듯이 그렇게 형제애가 깊어지는 건 인간도 마찬가지이겠다. 대체로 형과 동생은 두세 살 터울이 많다. 나이차가 많이 나면 동생 입장에서는 형이 아니라 삼촌이나 아버지 같이 느껴질 수 있다. 형님이라고 부르기가 곤란한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홍길동 같은 일이 지난여름 있었다. 선후배 몇 명이 등산을 하던 중이었다. 사전에 체온 재는 것도 난생처음이었고, 그냥도 숨이 찬데 마스크까지 끼니 죽을 맛이었다. ‘내가 왜 왔나’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산 중턱에서 잠깐 휴식할 때 누군가 팔순을 바라보는 대선배에게 덕담을 했다. “아이고 형님,..

중요한 물건

다행인지, 요즘 들어서 갖고 다니던 물건을 어디 놔두고 오는 버릇이 사라졌다. 금방 옆에 두고서 일어서면 홀라당 잊어 먹곤 했었다. 비올 때 멀쩡한 우산 버리고 일회용으로 다시 산 게 부지기수였고, 핸드폰도 몇 번을 놓고 왔는지 모르겠다. 우산이야 뭐 그렇다 쳐도 핸드폰을 놔두고 오면 여간 불안한 게 아니다. 대부분은 아는 곳에 두고 와 ‘찾을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지만, 그래도 그 시간 동안은 ‘혹시나’ 할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물건을 담았던 작은 봉지도 자주 버리고 왔다. 잘 뒀다 가져가야지 하면서 고이 두고선 돌아서면 깜빡 잊어버렸다. 까마귀 고기를 먹었는지 앉았다 하면 들고 온 걸 까먹는 게 일이었다. 이랬다가 기막힌 요령이 생긴 것이다. 갑자기 정신이 돌아온 것도 아니고, 누구 도움을 받지도..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이 긴 단어는 과거 인기 코미디 프로에 등장했던 웬 사람 이름이다. 오래 사는 생물들을 다 갖다 붙이다 보니 이름이 엄청 길다. 숨이 차 중간에 좀 쉬어야 할 지경이다. 코미디에 나왔던 이름은 이랬다.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담벼락에 서생원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뒤에는 좀 어거지로 붙인 티가 나지만, 어쨌든 애가 제 이름 외우기도 쉽지 않았을 듯하다. 본인도 어려운데, 남은 오죽하겠나. 애 이름 몇 번 부르다가 숨넘어갈 수도 있겠다. 실제로, 애가 물에 빠졌다는 걸 알리려 어렵게 애 이름을 말하면 애 아버지가 자꾸 ‘누구라고?’ 물어 긴 이름을 반복하는 장면이 나온다. 결국, 용건(用..

일반 수필 2021.09.02

중요한 이방인

이방인(異邦人)은 나와 상관없거나 모르는 사람을 말한다. 그저 남이어서, 나도 잘 모르고 그도 나를 속속들이 알 리 없다. 서로 아는 게 없으니 선입견이나 원망(怨望)이 있을 리 만무하다. 어떨 땐 이방인처럼 서로 모르는 게 편할 때도 있다. 서로 잘 알면 마음이 쓰이기 마련이라, 좋으면 좋은 대로 또 나쁘면 나쁜 대로 얽매이게 된다. 이래저래 마음의 부담이 없을 수 없다. 부담(負擔)이란 말 그대로 등에 짊어진 짐(burden)이다. 짐이 무거울수록 행동이 부자유스러운 건 당연하다. 바둑에서 ‘중요한 대국에 명국(名局) 없다’는 얘기도 있고, 운동선수도 큰 게임에서 실력 발휘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요한 치과치료를 가족·친구에게 맡기지 말라’는 설(說)도 있다. 부담감에 손이 떨린다는 것이다. 말..

일반 수필 2021.08.31

함께 있어 힘이 되는 존재

내게 도움이 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건 인지상정(人之常情) 일 것이다.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알고 지내면 여러모로 편리할 게다. 흔쾌히 도와주든 마지못해 그러든 하여간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이런 접근법이라면,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을 가까이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도움은커녕 거추장스럽기까지 하다면 ‘차라리 안 봤으면...’ 할 수도 있다. 나도 힘든 데 굳이 필요 없는 사람까지 챙기기란 감정적으로 쉽지 않다. ‘아틱(Artic)’은 북극에서 조난된 한 남자의 처절한 생존 과정을 다큐 형식으로 그려낸 영화이다. 엄청난 눈보라가 수시로 불어대고 사방이 온통 눈 천지인 고립무원의 땅에서 주인공은 하루하루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서 사투(死鬪)를 벌인다. 그러다 인근에 추락한 헬기에서 중상을 입은 ..

올림픽 선수들

올림픽은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니 참가 기회가 흔치 않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육상·수영처럼 기준 기록을 통과하거나 종목당 정해진 랭킹 안에 들어야 출전 자격이 주어진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기에 참가하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국가대표로 선발되면 이제 메달을 따기 위해 본격적으로 땀과 눈물을 쏟아붓게 된다. 힘들고 지루한 훈련을 먹고 자는 시간 빼고 하루 종일, 365일 반복한다. 휴일도 없고 명절도 없다.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으나 인고(忍苦)의 시간인 건 똑같을 것이다. 물론, 열심히 훈련했다고 모두 메달을 딸 수 있는 건 아니다. 메달이라야 금·은·동 밖에 없으니 산술적으로 못 받는 사람이 몇십 배 많을 게다. 모두가 국가대표인 선수들끼리 예선(豫選)을 거쳐 너 댓 번..

막걸리와 홍어

요즘 막걸리를 찾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본다. 가격도 그렇고, 도수도 적당하다는 것이다. 금방 배가 불러 많이 못 먹으니 건강 챙기기도 좋을 것이다. 잘 흔들어서 넘치지 않게 따는 노하우를 서로 자랑하기도 한다. 나이로 취향(taste) 따질 건 아니지만, 막걸리는 대체로 연식(年式)이 좀 된 사람들이 찾지 않나 싶다. 혹, 막걸리 회사에서 ‘섭섭한 소리’라 그럴지 모르겠다. 어쨌든, 홍어 안주에 시원하게 한 잔 마시면 술맛 날 것이다. 물론, 막걸리는 찌그러진 주전자와 양은(洋銀) 잔에 따라 마셔야 제격이다. 눈에 익숙한 물건이 입맛도 되살리는진 모르겠으나 지난 시절을 그리며 손가락에 잔을 걸어 마시면 좋았던 추억들이 떠오를 것이다. 얼큰해져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좀 살맛이 나는 것 같다. 목소리가..

외계인

외계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직접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좀 이상하게 생겼을 것 같긴 하다. 영화에서 보면 머리만 엄청 크고 손과 다리는 아주 왜소하지 않나. 상하 밸런스가 전혀 안 맞다. 외계인이 왜 그렇게 우스꽝스럽게 진화했을까? 추측컨대, 머리를 많이 사용하는 데 비해 근육을 사용할 일이 별로 없어서일 것이다. 우리보다 앞선 문명이니 머리나 입으로 모든 게 해결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도 진화를 하다 보면 미래에 저렇게 될까 궁금하다. 알 수는 없지만, 그 반대로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머리는 작고 손은 큰 모습 말이다. 아마, 다리는 외계인과 비슷하게 가늘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며칠 전 스마트폰을 한동안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함께 있었던 사람들에게 알아 봐야 되는데, 문제는 전화번호를 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