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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지 않은 일에 감사해야 할 이유

평소 우리는 의외로 자주 기도를 한다. ‘웬 기도?’ 하겠지만 알고 보면 이런저런 이유에서 수시로 뭘 갈구(渴求) 한다. 종교에 의지해 하는 경우도 있지만, 생활하면서 순간순간 그냥 바랄 때도 많다. 뭐, 절박함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 오늘 장사나 사업이 잘 되고, 자식이 공부 잘하길 기대하는 건 흔한 일이다. 주식이 오르고 로또가 당첨되길 바라거나 직장에서 남보다 빨리 승진했으면 하고 기도할 수도 있다. 차를 가지고 일 보러 나갔을 때 소망대로 주차공간이 딱 있으면 반가울 것이다. ​ 일상생활 중에 하는 기도는 ‘내게 좋은 일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대부분이다. 뭔가 당장 필요한 게 뜻대로 이뤄졌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라는 대로 되면 만족감에 행복해하곤 한다. 물론, 어디까지 만족할 것인가의..

일반 수필 2021.08.04

나쁜 친구들

한 때 ‘나쁜 사람’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한 마디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는 얘기이다. 최악의 케이스는 자기가 뭘 잘못한지도 모를 때이다. 그럴 땐 누구라도 버릇을 좀 고쳐줘야겠다 싶을 것이다. 최근 들어 친구들의 행태가 영 못마땅하게 느껴진다. 친구랍시고 되지도 않는 말을 멋대로 지껄이며 마음에 상처를 준다. 이랬다 저랬다 변덕이 죽 끓듯 하고, 틀린 걸 지적해 줘도 들어 먹질 않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게 없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친구라고 참아 왔다. 뭐라고 해도 대꾸 안 하고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넘어갔었다. 황당한 건, 그랬더니 그걸 모르고 좋다며 더 찾더라는 것이다. 아니, 말 같지 않은 얘길 하면서 눈치까지 없으니 어떻게 따지지 않고 넘어갈 수 있겠나. ‘참 나쁜 친..

일반 수필 2021.07.30

적자생존

뉴스를 보다 보면 회의 참석한 여러 사람들이 열심히 기록하는 광경을 흔히 목도(目睹)하게 된다. 모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눈을 지그시 내리깐 채 마치 착실한 학생들처럼 열심히 받아쓰기를 한다. 대게 이런 회의는 머리카락이 얼마나 머리에 가지런하게 붙어 있느냐에 따라 엄숙함이 갈린다. 전형적인 2:8에 기름을 반지르르하게 발라서 딱 눌렀다면 십중팔구 최고등급이다. 한우로 치자면 투 뿔(1++)이다. 복장은 양복에 넥타이를 맸거나 민방위복 혹은 군복처럼 통일된 복장을 갖춘 회의에서 이런 경우가 많다. 또, 사회적으로 이목을 끄는 조직이거나 직급이 높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도 자주 그렇다. 재미있는 것은, 의외로 회의 주관자는 ‘꼭 적을 필요는 없다’라는 말을 진짜처럼 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중간중간 그걸 계속 ..

동안 형님

나이에 비해 진짜 젊어 보이는 아는 형님이 자칭 동안(童顔)이라며 형님 행세를 하는 어떤 사람을 만났다고 한다. 밥 살 능력도 되고, 살갑게 대해 알고 지내면 좋겠다 싶었다는 것이다. 첫 만남에서 서로 마음에 들어 형제처럼 지내자고 했단다. ‘진짜 동안 형님’은 ‘자칭 동안 형님’이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것으로 알고 이래저래 겸양지덕(謙讓之德)을 발휘했다고 한다. ‘자동 형님’이 자기 친구들에 비해 제일 어려 보인다 하고, 와이프도 피부관리를 매일 해준다며 자랑할 때 열심히 맞장구를 쳤던 모양이다. 보통, 나이 어린 사람이 흔히 그러지 않나. 자동 형님 내외 입장에서는 오랜 만에 마음에 드는 이쁜 동생을 만난 것이다. 그런데, 우째 이런 일이. 두 번째 만남에서 바로 사달이 났다고 한다. 더구나, 그날은..

일반 수필 2021.07.21

어긋난 계획

계획대로 인생이 풀리면 그것만큼 뿌듯한 일도 없을 것이다. 오래 살면 살수록 그렇게 되긴 더욱 어려울 게다. 계획은커녕 하루하루 살기도 바쁜 게 보통의 인생인데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는 노인네 중에 90대 중반인데도 정정하신 영감님이 계시다. 할머니도 80대 후반이시다. 기가 얼마나 세신지 노인이라 부르기 죄송할 정도다. 삼복더위나 엄동설한에도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집에서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니신다. 게다가 아직 총기(聰氣)가 넘치셔 삶의 지혜를 후배들에게 잘 전수해 주신다. 고리타분하지 않게 농담을 섞어가며, 그리고 넛지(nudge)처럼 은근히. 그래서, 주변에 늘 후배들이 모여든다. 영감님이 아주 싫어하는 게 후배한테 밥 얻어먹는 것과 골프 칠 때 지는 것이다. 평소 자길 중늙은이로 ..

일반 수필 2021.07.19

주차의 정의란 무엇인가?

한 때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라는 책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하버드 대학 교수인 저자가 자신의 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유독 한국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우리가 그만큼 공정(公正)에 민감하다는 소리일 것이다. 아파트 인근 편도 1차선 도로에서 마주 오는 차 때문에 순간적으로 움찔했던 일이 있었다. 불법 주차한 차들로 인해 중앙선을 침범할 수밖에 없었는데, 맞은편 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왔기 때문이다. 분명히 느낌상으론 들이미는 기분이었다. 차를 급히 정지하면서 옆으로 바짝 붙어 비켰는데 은근히 화가 났다. 누굴 꼭 죄인 취급하는 거 같아서다. 자기는 정당한 권리가 있으니 ‘중앙선을 침범한 네가 비켜라’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그럼, 이미 무단 주차한 차들이 엄연히..

일반 수필 2021.07.13

인조인간

어릴 적 인기 만화영화 중에 ‘마징가 Z’란 게 있었다.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 인조인간 로보트, 마징가~아 제트...’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였다. 한참 지나서야 우리 영화가 아니란 걸 알았지만, 아무튼 그땐 참 재미있게 봤었다. 근데, ‘마징가 Z’는 인조인간이라곤 하지만 사실 인간의 모습은 아니다. 진짜 인조인간은 인간의 몸에 기계를 결합한 사이보그(Cyborg) ‘6백만 불의 사나이’ 쯤 될 것이다. 그 사나이는 사고로 다친 왼쪽 눈, 오른팔, 두 다리를 기계로 대체했다.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일 때 나는 '츠츠츠츠’ 소리는 놀라운 그의 능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물론, 그래서 돈이 좀 비싸게 들었다. 최근에, 6백만 불(dollar)에 비하면 소박하지만 치아 임플란트를 하나 심었..

고맙다는 마음 내기

살면서 ‘당신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같은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을 것이다. 크든 작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 대견해 사는 힘이 생길 만도 하다. 남에게 베푼 선(善)이 다시 좋은 영향으로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선순환(善巡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설령 이런 말들은 나와 상관없는 경우라도 듣기 좋다.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말의 온기(溫氣)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순간적이나마 자신도 그런 좋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기도 한다. 언젠가 지인들 몇몇이 등산을 갔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최근에 어떤 힘든 일이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으로부터 위로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연락이 없어 잊고 지내던 사람이 찾아와 놀랍고 고마..

일반 수필 2021.06.24

뛰어가나 걸어가나

며칠 전 아침에 시간이 급해 약속 장소로 좀 뛰어가야 했던 적이 있다. 택시 타고 가기도 애매한 거리여서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달리다 숨이 차면 다시 걷고 그러다 또 뛰고 그렇게 허겁지겁 목적지로 향했다. 바쁘게 뛰어가는데 앞에서 웬 노인네가 천천히 걸어가는 게 보였다. 옆으로 지나가자니 가로수 때문에 길이 좁아 보여 좀 걸거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노인을 지나쳐 바삐 왔는데 하필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그때 막 빨간불로 바뀌어 버렸다. 열도 나고 마음도 급했지만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도리(道理)가 없었다. 신호등이 바뀌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고개를 돌리는데, 아까 그 노인네가 옆에 서 있는 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허탈감이 치밀어 올랐다. 뛰어 오나 걸어오나 똑같아져 헛일 한 셈이니 내 딴에는 그럴 만도..